폭력의 추억

떠오르는 추억 : 선생님의 폭력

by 핵추남


얼마 전 재밌게 본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보고 나면 가슴이 뭉클하고 이 드라마 때문에 한주가 기다려지곤 했는데,

그중에 한 장면을 보고 잊고 지냈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그전에 최근 유명 시상식에 한 장면




두 사진을 비교해 보자.


위에서 잘못한 사람은?

이제는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하겠지.


아래에서는? 놀랍다 이게 양분이 된다니.

어떤 기사에선 동양은 윌스미스편, 서양은 크리스락 편이라고도 하던데

어떤 진보인사란 사람은 아무리 해도 세상에 정말 하면 안 될 맞을 짓이 있다며 폭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나 그럴 만했다고...


나의 상식은 사적인 복수와 상호 폭력을 막기 위한 방향으로 세상은 발전해 왔고

그래서 법과 규율이 있으며 너무너무 속상해도 (그 마음 충분히 '공감' 하지만)

나의 자위권을 위한 것이 아닌 폭력은 언제 어디에서도 정당화가 될 수 없는 거라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윌스미스 싸대기가 속 시원했다는 말들에 적잖이 놀랐다.



그럼 위에 형욱이가 선생에게 싸대기 맞는 장면에선?



크리스락 편 : 보기 싫은 셔츠와 상관없이 어떤 폭력도 용인이 안된다.


윌스미스 편 : 보기 싫은 셔츠라 하여 선생이 학생에게 폭력을 가해선 안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지금은 불가한 그런 상황.

왜 저 때는 그게 용인되었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가 다니던 곳은 가톨릭에서 운영하여 수녀님이 담임이었는데. 반 아이 중 하나가 친구들에게 그렇게 똥침을 찌르고 다녔었다.


아이들의 클레임이 쌓이고 다그쳐도 똥침을 멈추지 않자 담임의 조치는 그 친구에게 똥침을 당한 아이들의 숫자만큼 담임이 직접 되돌려 주는 것.


물론 항문이라는 매우 취약한 곳을 장난으로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나

( 이렇게 위험한 거라는 걸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아직도 대수롭지 않은 장난이라 여기잖아)

초등학교 2학년이 똥침을 통해 무언가 이익을 득하려 한 것 같진 않고 어쩌면 애착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데 (지금도 이런 접근은 하지 않을 거 같다)


아무튼 응징의 시간.

1회, 2회, 3회, 버티지 못하고 뒹구는 아이. 다시 일으켜 세우는 담임(수녀님).

울면서 잘못했다고 절규하는 아이, 얼굴이 빨개져 그러면 왜 잘못을 저질렀냐는 담임.


그 장면을 바라봤던 나는 30년이 더 지난 일인테도 무척 괴기하게 기억이 남아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뭔가 교실에서 물건이 없어졌나 보다. 눈 감고 손들어 같은 고전 수법으로도 범인은 (애초에 법인이 있는 사건인지부터가 의문) 나오지 않았고 집단을 다룰 때 가장 쉬운 방법. 연대책임.

다른 말로 단체 기합.


그리고 마무리는 책상에 무릎 꿇고 올라가 손들고 담임은 지나가며 모두의 허벅지를 몽둥이질.

허벅지 앞에 시퍼런 멍이 모두들고 하얀 피부 위에 퍼런 멍이 주는 이미지가 참 미묘하다고 느꼈다. 저녁에 그 멍을 본 아버지는 화가 나서 다음 날 학교를 찾아가겠다 했지만, 어느 누구의 부모도 학교를 방문한 사람은 없었다.


분명 체벌과 피멍은 들었는데 잘못한 이는 없는 아주 이상한 경험이 뇌리에 박히는 날이었다.

재밌는 것은 학생들 모두는 서로의 멍을 보며 내가 더 크네 네가 더 크네 하면서 웃었다는 거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을 이렇게 생활하면, 웬만한 대한민국 학생들을 알게 된다.


선생님이 까라면 까야 하는구나. 이유와 원칙 따위는 물을 필요가 없구나.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마치고 부모님들은 퇴장하고 강당에 학생과 교사만 남은 시간. 체육 선생님이 올라오더니 (왜 체육 선생님은 수업 시간 외에도 체육복을 입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무용선생님은 무용복 입고 있더도 되는 건가?) 왜 떠들었네 움직였네 이유를 말하며 단체 기합. 지난 9년의 학창 시절엔 경험해 보지 못한 원산폭격. 일명 대가리 박기.


의자가 빼곡한 강당에서 두 발과 하나의 머리로 삼각형을 이루어 무게를 잡아야 하는 이 기술을 하기란 쉽지 않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시도하고 여기저기서 윽박이 들리고.


나의 부모가 없는 강당이란 폐쇄된 공간. 분명 숫자는 학생들이 많지만 선생님들의 윽박에 벌벌 떨며 무얼 그리 잘못했냐는 불만도 곧 사라질 정도로 정신없이 체벌을 '수행'한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감이란.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선생님들의 기싸움 혹은 길들이기였다.


아주 저질스러운 방식의.


이후엔 수업 때도 종종 '나가서 대가리 박아' 가 나온다. 책이 없단 이유로 짝과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대답을 못했단 이유로 등등. 가끔 선생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삼각형을 어렵게 만들고 버티는 학생들을 발로 밀어 넘어뜨리고 다시 세우기도 하고 머리를 짓밟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우레탄 운동장에서 원산폭격 자세로 앞으로 기는 기합도 받았다.


그러고 나면 머리가 시뻘게지고 껍질이 벗겨진다.


근데 웃긴 건 이 모든 것들이 적응이 된다는 거다.




얼마나 폭력이 일상이었냐면 교사끼리도 싸운 적이 있다.


내 기억엔 일방이 아주 나쁜 놈이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사우나 가고, 아이들 도시락 뺏어 먹고, 학부모 앞에서 아이를 때리는 등. 아마 이 때 맞은 아이의 교사가 와서 서로 욕하며 싸운 듯.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저곳에서 우린 무엇을 배웠을까?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공부 잘하거나 부모가 유명하면 안 건든다는 것.


근데 이게 사회로 나오니 똑같다는 것.


그러면 어릴 때부터 real society를 알려주기 위한 참교육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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