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모두 아티스트

‘아이’라는 재료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by 핵추남

나에겐 귀여운 조카들이 많은데,

그들의 부모들을 보면 각자가 실로 저마다 다른

철학과 성향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사실 예전에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가까이서 살펴볼 기회가 없었지만 친한 지인들의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부모에 따라 참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몇 달 전의 아이와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다음에 볼 때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의 부모의 이런 성향이 혹은 저런 교육철학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본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현이 될까?

혹시 저 친구는 아이를 그르치진 않는가?

다른 지인은 아이의 잠재력을 몰라 보는 건 아닐까? 등등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부모들은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매일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그려야 멋진 작품이 완성될지 고민하며 사실 언제 완성될지는 누구도 모르고 매일매일 작품을 빚어내는 아티스트와 같다.

얼마 전 본 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키우느냐에 따라 자식 동물들의 생존율이 달라지던데 인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재료를 잘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듯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바라보고 키우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


단어의 선택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실패'를 피하려면 가장 평범하게 하는 것이 좋은데, 확률로 따지면 평균값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범주 내에서 길러내면 '대박'은 아니라도 '평타'는 간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게 진정 아이가 바라는 것이었는지는 부모도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표본오차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평균값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니까. 10년 전에는 평균이었지만 10년 후에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이는 커서 달리진 표준값을 따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시대와 상관없이 표본오차 바깥에서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평균값’을 따르라 키운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림 위에 작은 점을 찍은 것이 용의 눈이 되어 화룡점정을 이룰 수도 있지만 그저 지저분한 붓칠에 그칠 수도 있다. 나비효과처럼 아이의 어린 시절 부모의 작은 행동 하나가 아이가 커서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 부모들은 매일이 살엄을을 걷는 듯할 것 같다.


그래서 부모들은 모두 아티스트다.

언제 끝날지 모를 작품을 만드는.

그래서 그들은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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