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을 보며 기억난 그녀의 트라우마
넷플릭스의 소년심판.
캐릭터도 평면적이고 이야기는 전형적이고 연출도 그닥 매력이 없어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드라마였지만 어찌어찌 다 보게 되었고,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며 문득 지인의 트라우마가 기억이 났다.
꽤나 오랜 시간 전, 그녀는 누군가와 '어울렸고' 분위기를 타며 '술을 마셨고'
그러다가 '모텔에 가게 되었다'. 과음으로 정신이 없어 잠든 사이 무언가 불편한 마음에 눈을 떴는데 동행한 남자의 성기가 몸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그것이 그녀의 첫 경험이었고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한 여성이 어떤 남성과 '어울리고' , '술을 마시며', '모텔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 그 남성과의 섹스를 허락하게 한 것일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일련의 행위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그녀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야 했으리라.
그래야 그녀는 일상을 살 수 있으니까.
그 시간은 절대 '공포스럽지' 않았고, 잠결이지만 자신 또한 '원치 않은 것은 아니'며 남녀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오히려 본인을 '건들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라고 되새기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그다음을 살아야 했으니까.
대한민국 여성 중 크거나 작거나 성적인 피해를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저 그것이 '피해'를 받거나 준 것이 아니라고 서로 여기며 살 뿐이지.
과거에는 그것을 규정하는 단어도 없어 몰랐고
지금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손해는 여성이 보게 되니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냥 사는 거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버스정류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버스에서 내려 제 갈 길을 찾아가는 혼잡한 거리.
내 눈앞에서 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고 유유히 앞으로 사라지는 남성.
그 남성 쪽을 바라보며 '아씨' 라고 외치며 불쾌함을 표현하고 곧장 제 갈 길을 가던 여성. 이 모든 광경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서 펼쳐졌는데.
누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함부로 만져도 된다 하겠는가.
매우 불쾌하지만 그 누군가를 찾아 시시비비를 가리고 내가 '피해자'라고 외치는 것이 도리어 손해라는 것을 아는 그녀는 지나가다 똥을 밟은 것과 같다 생각하며 갈 길을 같을 터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바닥에 있던 똥을 밟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똥은 스스로 나에게 튀지는 않지 않는가. 인지하면 피할 수도 있고.
(오해하지 말자. 나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게 읽혔다면 본인의 문해력을 의심해 보자)
당신의 어머니, 누나 그리고 여동생 혹은 할머니까지.
그런 일이 일생 동안 없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순간 그것이 '별일'이 되고,
본인이 그 '별일'을 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서워 지나가는 것이지.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녀들에게 공포를 준 적은 없었을까.
내가 생각한 '로맨스'가 그녀들에게도 같았을까?
돌이켜보니 잘 모르겠다.
아니,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 나온 글이다.
2015년, 익명의 여성이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나는 스물세 살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온라인 포르노에 노출된 첫 번째 세대다. 우리는 인터넷 속 낯선 이들을 보며 섹스가 무엇인지 배웠다."
이어서 그녀는 남성 파트너들이 포르노에서 영감을 얻어 그녀에게 묻지도 않고 행한 수많은 행위들(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얼굴에 사정하는 것 등) 와 그녀가 꺼렸음에도 하도록 강요한 행위(항문섹스 등), 거절했다고 비난받은 행위(집단 성교 등) 등을 나열했다. 그중 무엇도 그냐가 원한 것은 없었다.
그녀는 "그 순간마다 '쿨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그를 실망하게 했다. 난 내숭쟁이가 됐다."라고 말했다.
- 데보라 카메론의 '페미니즘'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