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편지지가 먼저냐 좋은 문장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로다. : 비즈니스에서 UX/UI의 가치

by 준마이

디자인은, 특히 UX/UI는 비즈니스 맥락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답이 없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실없는 생각을 굴리며 쓴 글. 누군가는 “좋은 디자인이 좋은 경험을 만들고 고객을 데려와 돈을 벌게 한다”라며 칭송하고, 또 다른 사람은 “아무리 예뻐도 돈 못벌면 의미 없다.”고 한다. 이 글은 한창 UX/UI가 요술방망이처럼 여겨지며 수많은 직무가 떠오르고 부트캠프가 수도 없이 열렸던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느꼈던 시기에 대한 회고록이다.


연애 편지지 VS 연애 편지 내용

홍대, 성수, 을지로, 전국을 뒤져서 누가봐도 정말 근사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아뿔싸, '김모씨'에게 썼어야 할 편지의 대상을 '박모씨'에게 썼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아니면, 편지에 오늘 장봐야 할 목록을 적었다고 쳐보자. 읽는 사람 입장에선 '이 친구가 드디어 조현병에 걸렸나보다'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편지 내용까진 잘 썼는데 편지지 구석에 “P.S. 사실 너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라는 말을 적었다고 쳐보자. 대참사다.


반대로 편지지와는 관계 없이, 먼저 엄청나게 훌륭한 편지 내용을 쓰는데 성공했다고 쳐보자. 상대가 읽자마자 눈물을 콸콸 쏟을만한 감동적인 글이 나왔다. 근데 글씨체가... 이제 글씨를 쓰는 게 아닌, 글씨를 '그리는' 사촌동생의 글씨같다면 어떨까. 아니면, 검은색 편지지에 검은색 볼펜으로 글씨를 써서 암호를 해독하듯 써있는 글씨를 햇빛에 비춰야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아니면 편지지를 집어올리자마자, 악취가 진동을 해서 냄새 때문에 글이 안 읽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형식, 내용 모두 맞았지만 맥락으로 인해 곡해된 특이케이스


디자인이 예쁜 편지지고 서비스가 그 안에 들어가는 글이라면, 고객에게 쓰는 연애편지에선 정확한 사랑을 고백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담는 그릇이 엉망이라면, 제아무리 정확한 사랑의 고백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UX/UI는 메시지를 돋보이게 해주는 ‘그릇’이고, 서비스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우린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걸 제대로 만들어 좋은 그릇에 담아서 줘야한다.


특히 요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좋은 그릇에 좋은 내용이 담긴 서비스들이 워낙 많아졌다. 상향평준화가 이뤄졌다고 느낀다. 또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정말 어떤게 중한지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UI가 문제인지 그냥 서비스가 별로인건지 뾰족하게 알 도리가 없다. 아니, 제대로 분석할 시간이 없다.


정말 어딜 가도 고객 경험을 외치던 시기가 있었다. 2021년 정도엔 CX BX DX UX 하면서 모든 것들이 경험을 중심으로 개편됐다. 시장에 아직 제대로 진입하지 않은 학생들은 뭐가 더 크고 나은 건지 제대로 모르지만 일단 배우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조직이 개편되는 것을 보며 또 한철 지나면 사그라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한숨 쉬었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시끄럽게 경험 중심을 외치며 우리가 제일 잘한다고 외쳤다.


4년이 흘렀고, 모르겠다. 우리가 진짜 고객 경험을 찾아서 돈을 제대로 번게 맞나. UX를 디자인 정도로 바라본 조직이 있었고, UX를 CS로 바라본 조직도 있었을 것이며, UX를 기업 전체의 아이덴티티로 바라본 조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시각들로 열심히 달려온 기업들의 성적표를 보면 UX는 결정적인 역할이 아니었던 거 같다. 결국 사람들이 욕망하는 걸 맞는 값에 돈받고 잘 판 기업들이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다듬는 데에 UX를 적절히 사용한 기업들만 살아남았다고 느낀다.


지난 시기 동안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자주 요술방망이처럼 사용됐다. 무슨 얘기냐 하면, 디자인만 좀 고치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 처럼 사용됐다는 얘기다. 거기서부터 오류였던게 아닌가 싶다. 이 쯤에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잠깐 얘기하려 한다.


디자인은 얼마나 중요한가

글쓴이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그리고 한 2학년 당시, 기초디자인 수업을 들었다. 당시 수업을 진행하시던 교수님은 정말 수업이 가진 이름의 무게를 진지하게 고민을 하신 분이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2시간 만에 이해시킨 당시 수업의 내용은 이러하다.


먼저 교수님은 각기 다른 학원 웹사이트 3개의 링크를 우리에게 줬다. 한참을 그 링크를 우리에게 살펴보라고 하고선 “3개의 학원 웹사이트를 봤을 때 어느 학원이 제일 좋아 보이느냐?”라고 우리 모두에게 물었다. 아는 것에 대해 뽐내기를 좋아하는 저학년이었던 우리는 교수님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혈기왕성한 두뇌를 쥐어짜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내뱉었다.


'A학원은 디자인이 거의 없다시피해 오히려 진정성 있게 보입니다. 따라서 A 학원이 좋아보입니다.'

'B학원은 로고에서 강렬한 학습욕구가 보입니다. 따라서 B학원이 좋은 학원입니다.'

'C학원은 잘 정돈된 UI를 갖췄기에 커리큘럼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따라서 C학원이 좋은 학원입니다.'


30명 남짓 되는 갓 고등학생티를 벗은 아이들은 손을 번쩍번쩍 들고 본인의 의견을 약 30분 정도 던졌다. 교수님은 조용히 모든 의견을 진지하게 들었다. 교수님은 마지막 학생이 말할 때까지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선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만 보고 어느 학원 질을 판단하다니, 너네 정말 오만하다. 진짜 좋은 학원인지는 직접 상담을 받아보고 수업을 들어봐야 알지.” 라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워야 한다는 맥락에 푹 빠져있으니 갑자기 그 이야기가 달리 들렸다. 그리고 교수님께선 과학자들. 이를테면 Nature에 수록된 논문을 한 편 집어 읽어보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문서들을 한 번 읽어보면 까무러칠 거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논문에 아무런 디자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어서 교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별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어쩌면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것은 권력에 대한 표시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제 푸는 데 요술방망이는 없으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 UX/UI 개선한다고 떼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몇년간 한국 테크씬에서는 UX/UI에 너무 많은 환상이 있지 않았는가 하는 소신발언을 한다. 회원가입자를 늘리려면 회원가입 버튼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신규 트래픽 대상 광고를 돌려야 하는가. 아니면 오프라인에 광고를 해야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간과 비용이 허용하는 한에서 전부 다 해야한다. 그게 악취가 나고 땀냄새가 진동을 하고 구려도 우리는 그걸 해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래왔다. 코로나를 겪은 한국의 2020년대서부터 UX는 Buzzword로 사용되며 뭔가 고상하게 UX만 개선하면 무언가가 해결될 것 이라 홍보하고 설명하는 장사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한 5년 전까지만해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찌보면 근 몇 년간 우리는 UX/ UI 디자인에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한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요술 방방이는 없는데 말이다.



디자이너는 죄가 없다.

아니, UX/UI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UX를 요술방망이라고 설명하고 홍보했던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 또 비즈니스 전략과 얼라인되지 않은 UX/UI들이 죄가 있다. 또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내부 이슈에 묶여서 구현을 미뤘던 조직 문화에 죄가 있다. UX/UI는 사업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지, 종착지였던 적이 없다. 디자인을 탓하기 전에, 우리 목표와 디자인이 잘 맞추지 못한 조직을 탓하자. 또, UX가 요술방망이인 것 마냥 소개한 특정 사례들에 푹 빠졌던 시기를 반성하자.

당연히 회사마다 상황도 다 다를 것이다. 실용성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선 투박해 보여도 빠르게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사용자가 바로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더 유리할 것이다. 그게 좋은 디자인일 것이다. 반대로 명품을 만들기 때문에 고급 이미지가 중요한 브랜드는 디자인에 1년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디자인의 정의를 '계획 세우는 것' 이라고 딱 한 줄로 정리해주신 성재혁 교수님의 설명보다 더 정확히 디자인을 설명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아직은 없다. 이 정의가 나에겐 가장 납득 가능하고 넓은 범위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편지지, 편지 내용이고 나발이고 상대에게 사랑을 줘야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잘 세우자. 지금 편지를 쓸 시간이 아니라 근사한 식당을 예약해야할 때일지도 모른다. 아니, 집 앞에 뛰어가 얼굴을 봐야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니, 프로포즈해야할 타이밍일지도, 아니 헤어져야할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게 다짐하고 매번 의심스러운 기획과 보고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간을 잘 찾으려는 노력이라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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