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많을 수록 좋은 것 같다.
지난 날, 문득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혼잣말을 했었다. '지나치게 맑게 살면 힘든 것 같다. 그냥 흐릿하게 사는 것도 가끔은 건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과 고민과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맑게 생각할 수록,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찬다. 쓸데 없다기보단, 답이 없는 것들로 가득찬다. 그런 것들로 부터 가끔은 멀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Naive Optimism이라는 단어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짤을 문득 문득 꺼내볼 때가 있다. Native optimism은 직역하면, '나약한 긍정' 같은건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A에서 B로 갈 때 필요한 자잘한 모든 과정들의 힘듦을 잊고 그냥 막연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동의한다. 많은 경우 이런 나약한 생각들에서부터 무언가가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 깊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흐리멍텅하게 생각하고 일단 덤비는 태도들이 가져다주는 선물들이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무턱대고 덤비는 사람들을 애정한다. 무턱대고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애정한다. 그리고 어려운 것들을 '뭐 그냥 하는거죠' 하고 묵묵하게 하는 사람들도 애정한다.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을 사랑한다. 조잡하거나 미성숙하거나 어딘가 부족하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꽤 그럴싸하게 나오는 것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무얼 이루어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애정한다. 그 와중에 그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설명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애정한다. 그 사람의 존재에서부터 나온 그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사랑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덤빌 때가 되면, 이 문장을 항상 되새기려고 한다. '그냥 이렇게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되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때 일단 하는 습관을 몸에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잘 안되지만, 그냥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삶의 방향을 선택할 때, 생각보다 말도 안되는 환상으로부터 결정했다는 점을 문득 깨달았다.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선 픽사라는 회사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그 어린 생각에서부터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다른 이들의 인터뷰를 보고선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서 덤빈 나는 수 많은 점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 그 점들이 이어진 어느 중간 지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생각과 비슷하고 환상과는 약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뒤돌아 생각해보니 되게 별 것도 아닌 것들에 자극을 받아서, 삶의 레퍼런스를 구하고, 우리는 그 것을 얻으려고 학교를 가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시간을 썼다. 이렇게 축약해서 말하고 나면 어이가 없고 멍청하고 나약하지만 난 생각보다 그런 멍청한 환상들로 먹고 살아 왔다. 그리고 그게 행복했던 것 같다.
이 쯤에서 내린 결론은 행복하게 살려면 멍청한 환상이 많아야 한다 정도인 것 같다. 다르게 얘기하면 흐릿한 영역이 많아야 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어야 하고, 나의 바깥에 더 큰 세상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있어야 하고, 내가 모르는 곳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어야 하고, 그런 착각을 계속 쌓으며 살아야 한다. 이 생각은 '행복을 찾아서' 영화 첫 장면을 통해 얻은 생각이다.
삶과 자유의 권리, 행복 추구권을 언급한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제퍼슨은 어쩌다가 행복의 '추구'라는 단어를 적절하단 걸 미리 알았을까?
사실 행복은, 말마따나 절대 도달할 수 없이 평생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환상을 추구하는 그 과정이 결국 행복으로 가는 길인가보다, 생각했다. 환상을 많이 갖게 될 수록 추구할 행복이 많아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이메일을 읽으며 행복한 꿈꿀 수도 있고, 닭장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다가도 행복할 수 있다. 단, 목표와 환상은 다르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어떤 것이라면, 행복은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미래이다. 허무맹랑한 환상을 많이 만들고 개박살이 나든 말든 일단 덤비자. 그리고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코웃음이 나올 것이다. 그 때 또 다른 환상을 만들자. 그리고 또 꾸역꾸역 걸으면 된다. 그게 그냥 삶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