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집이지
회사 카페에서 돈 주고 커피를 마시는 게 아까워 (개인적으로 커피를 돈 주고 사 먹는 걸 항상 아까워하는 편이다) 탕비실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때 앱에서 온 푸시 알림. 부부이고 자산이 몇 억이며 앞으로 집을 살지 차를 살지 고민하는 글이었다. 아침에 출근 시간 2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 굉장히 억울해하던 찰나에, 몇 십억짜리 집을 사는 40대 부부의 글을 읽으면 현실감이 별로 없이 느껴진다. 그러고선 자리에 돌아가 앉아, 일을 허공에 던졌다가 다시 잡았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딘가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들뜨면서도 묘하게 짜증이 난 상태로 묘하게 무례하면서 묘하게 정중하게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어딘가 붕붕 떠다녔던 하루였기에 나름 마무리 차원에서 일을 더 하고 갈지 집에 갈지 고민하다가, 이게 회사에는 무슨 가치가 있으며 나에게는 무슨 가치가 있는지 잠시 반추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의미가 있어 다시 사원증을 메고 사무실로 돌아가 30분 정도만 더 한다. 그리곤 이럴 거면 내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다시 집으로 간다.
왜 집에 갈까. 잠시 반추해 본다. 하루 깨있는 시간이 약 18시간 정도 되고, 그중 4시간은 출퇴근을 준비하는데 쓰니까, 실질적인 시간은 14시간. 그중에서 9시간은 회사에 있으니 5시간 정도가 남는다. 아, 하루 5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라니, 많지도 적지도 않군 생각한다. 아 그럼 잠자는 시간 포함해 매일 11시간 정도를 보낼 곳이 집인가 봐, 잠시 생각한다.
잠을 자고 쉬기 위한 곳이라고 했을 때 내 지금 집은 참 알맞다. 아늑하고 조용한 편이다. 더 큰 곳, 더 입지가 좋은 곳, 더 교통이 좋은 곳으로 가려면 가겠으나 지금 대단히 불행하지 않고 사실 자주 만족스러워하며 살고 있다. 오래 살아서 그런 건지, 물건에 큰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불편을 잘 참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아늑한 내 집이 참 좋다.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해본다. 이 집이 10억이었으면 내가 기분이 더 좋을까 생각해 본다. 아닐 거 같다. 내 집은 그냥 내 집이라 좋다. 더 넓은 평수의 집이었으면 기분이 더 좋을까? 잘 모르겠다. 그건 좀 더 좋을지도. 아 그럼 가격이 아니라 넓이의 문제인가 보다. 그럼 나는 더 큰 집에 살고 싶은가? 뭐 딱히 그런 거 같진 않다. 아늑한 지금이 나쁘지 않다. 내 집의 아늑함에 대해 생각할 땐 돈 생각과 조금 다르다. 그냥, 내가 만든 어떤 작은 세상 같은 느낌에 가깝다. 그러다가 다른 집을 찾아볼 때쯤에야, 우리 집이 돈처럼 느껴진다. 이걸로 자산을 만드는 세상이 있다는 걸 다시 크게 깨닫는다.
칠레에서 심리상담을 하던 친구와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한국 아파트와 집에 대해 얘기하는 나에게 역정을 냈던 순간이 생각난다. 집은 집이다. 사람 사는 곳이다. 집을 돈으로만 보길 그만해라. 부동산으로 재테크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인 나에게 참 억울한 말이었지만, 그냥 문득문득 그 순간이 떠오른다. 자고 쉬고 그런 곳이지. 뭘 그냥. 그런 거지.
지지난달인가, 내 집에 애정이 부족해진다 싶어. 대청소를 한 번 했다. 거기에 더해 한 10만 원 정도 써서, 30년 된 빌라의 전자기기들을 스마트 무엇으로 바꾸니, 근사한 IoT 집이 됐다. 말로 에어컨을 끄고 노래를 틀고 조명을 킨다. 퇴근하고 들어온 이 집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잘 생각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내가 사는 곳이다. 살기 좋다. 그냥 그렇다.
집을 사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차를 사고,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30년 할부로 집을 사고, 그러다가 그걸 다 갚으면 이제 죽을 때가 된 거야. 인생이 그래 별 거 없어.라고 말하던 경제학 수업 교수님 문장이 떠오를 때면 참 차갑고도 따뜻하고 슬프다. 맞는데, 아는데, 그것 보다 더 뭔가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교수님. 교수님 말 맞는데요, 저는 그냥 다르고 싶어요. 저 지금 그렇게 되는 거 아는데, 그냥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 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냥…
억울함을 뒤로하고 내 집 책상 의자에 앉는다. 카뮈의 글을 읽을 때가 온 건가, 생각한다. 모르겠다. 생각하다, 모르겠다. 한탄과 혼잣말과 고찰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매번 애매모호하게 줄을 끊고 바닥에 주저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