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edle&Gem, 반가운 외로움

반가운 음악을 만난 날

by 준마이

혼자 있는 누군가의 방의 들어가서 조용히 앉아있는 기분이 드는 그런 노래가 있다. 니들 앤 젬의 노래가 꼭 그렇다. 듣고 있으면 어딘가 부드럽고 섬세하게 느껴지면서 묘하게 벅차오르지만 그 감정이 너무 커서 혹시 평화를 깨트리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진다. 유약하고 얇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도 단단한 질감으로 만들어져서 함부로 깨지지 않는 그런 유리컵을 만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다시 되새기고 싶어 져 최근에 <H의 미간>을 자기 전에 무한히 반복해 들었으며, 쓸쓸하게 잠들면서도 마음을 단단히 잡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군대에 갇혀있을 때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몇몇 안 되는 순간을 준 고마운 가수가 있다. 점심을 먹고 어디 짱 박혀 드러누워서 노래를 듣는 것이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희였다. 라벤더 냄새가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햇빛을 받으면서, 혹은 흐린 하늘을 보면서 눈을 감고, 두 손으로 뒤통수를 포개고 잠시 여유를 피워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던 즈음에 어떤 경로로 아이패드에 저장되어 있던 <H의 미간>을 처음 제대로 들었었다. 떼거지로 몰려있는 그 정신없는 내무실에서 잠시 누군가의 조용한 방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나에게 말하는 것은 아닌 거 같으면서도 괜히 들리게 혼자 조용히 읊조리는 듯 쓴 가사들을 듣다 보면 그게 참 평화롭고 좋았다. 주변이 아무리 시끄럽고 오늘 일이 아무리 고통스러웠어도, 그냥 그 순간 동안은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자유로웠고 어찌 보면 쓸쓸한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을 내 것인 것 마냥 널브러져서 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게 참 감사했다.


들을 때마다 참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감정을 전달하는 소리와 글을 써 내린 걸까.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지면서도, 그 때문에 생기는 여러 자잘한 아픔으로 생긴 분노 같은 것들, 그리고 체념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풀어낸 건지 너무 궁금했다.


이젠 6년이나 지나 돌아갈 수 없는 그때가 미약하게 그리워질 때 즈음 니들 앤 젬이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 지내길 빌던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해 ‘나 잘 지내, 오랜만에 밥 먹자’라고 손 내민 것 같아 기뻤다. 게시물을 보자마자 바로 예약했고, 오랜만에 다시 모든 앨범을 찾아들었다. 손과 발이 꽁꽁 묶여있고 눈과 귀가 막혀있도 정신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을 줬던 그때가 하나씩 떠올라서 좋았고, 공연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퇴근시간을 넘겨서까지 꽤 중요한 내용을 다루는 회의가 이어졌고, 다행히 빨리 마무리되었지만 퇴근하고 가기엔 좀 늦은 시간이었다. 더욱이 비가 왕창 내렸으며 길은 막혔고, 나는 우산도 없었다. 퇴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끔한 내 모습은 건물 밖을 나서자마자 물놀이 나온 아이처럼 온 옷과 머리가 젖은 채로 우스꽝스러워졌다. 일단 몸이 공연장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지만, 교통은 또 어떤가, 1시간 걸리는 길은 2시간이 되었고, 버스 기사님은 내 마음도 모르고 가장 안전하고 느린 길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망스러웠다. 조금 과장 보태서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가는데 폭우가 오고, 길이 막히고, 퇴근을 늦게 한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짜증이 났고 무엇보다 속상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또 지하철을 타고, 급히 우산을 샀지만 이미 다 젖은 꼴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자리가 없어서 어정쩡하게 아무 의자에 앉았다.


아 그러니까, 공연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와 이게 혼자 내는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신 거였구나. 공간도 노래도 모든 게 참 완벽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과 말하는 것과 그 사이의 것들마저도 잘 짜인 공연 같았다. 그래서 참 좋았다. 늦고, 내가 오느라 비에 쫄딱 맞고 우산을 쓰고 그런 건 이제 잘 모르겠고, 그냥 너무나도 반가웠다. 내가 좋게 기억하는 그 시절이 다시 튀어나온 것 같아서 기뻤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떼창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반가워, 잘 지냈다니 듣는 내가 너무 기쁘다.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참 행복했고 설렜다. 조용한 그 방에 초대된 기분이어서 고마웠다. 조용한 풍경 속에 지내면서 있노라면 이런 감정을 떠올리실 수가 있었겠구나, 음악을 참 잘 묘사하셨다. 그 풍경이 그려진다.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을 차분하게 듣는데, 왜 내가 다 신이 났을까.


그러니까, 이게 니들 앤 젬 음악이 주는 어떤 힘이었던 거 같다. 눈 감고 듣고 있노라면 완전히 혼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게 이 가수의 힘이었다. 원망하고 짜증 나고 시끄럽고 정신이 없고,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번쩍 들어서 옆에 치워둘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게 이 가수의 힘이었다. 그래서 참 고마웠다.


반가운 노래와 가수와 공간에서의 감흥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도 기록해도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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