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는다.

쓸데없는 싸움 하지 않기

by 준마이


3년 전, 컨버스의 'Create Next' 브랜딩 캠페인의 메인카피를 문득 문득 떠올리는 날들이 있다. 왜 좋은 광고인지, 카피가 잘 쓰여졌는지 문장 구조가 어떠한지에 대한 내 식견은 짧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우나, 이 메시지가 나에게 어떤 울림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순 있을 것같다.

1등은, 합격은, 웃음은 한순간 뿐이고 우리는 나머지 나날들을 산다.
그렇다고 그 날들이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드는 새로움은 경쟁하지 않아도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그 과정속에서 탄생하니까
싸우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7.50.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4.59.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5.11.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5.29.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5.41.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5.44.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02.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07.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11.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15.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18.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36.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39.png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1.36.47.png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3GJwDNWy5bQ


3년이나 철지난 이 광고 카피가 왜 나는 이렇게 문득 문득 떠오르는 걸까. 젊음, 서브컬쳐, 자유, 창의성, 반항이라는 컨버스의 키워드들을 한국으로 수입해 적용할 때 적절한 톤앤 매너를 골랐다는 점에서 뇌리에 깊게 박힌 것 같다. '마음가는대로 막 해' 라던가, '마음껏 반항해'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차분하고 성숙하게 앉아서, '우리 서로 싸우고 그러지 말자' 라고 말하는 게 어찌나 보기 좋은지. 커리어와 학벌이라는 키워드가 먼 것 처럼 보여도 비교와 불안과 경쟁이 있는 거 아니까, 그냥 재밌게 놀고 싸우지 말자. 라고 말하는 그 톤앤 매너가 한국의 컨버스에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뇌리에 깊게 박힌 것 같다.


내가 소유한 것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 쉽다. 그리고 나는 그게 두렵다. 소유한 것들은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 것으로 나의 인정을 채우는 내가 두렵다. 학벌, 커리어, 자산 같은 것들이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로 사용되는 것들이 나는 너무나도 무섭다. 그런 것들에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그러려면 내 발로 산 속에 들어가 홀로 사는 수 밖에는 없으니, 골치 아프다. 지금 쥐고 있는, 다르게 얘기하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다 빼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들을 잔뜩 채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존재'로서 인정받고싶다. 누군가에게 기억될 때 '어디 다니는 누구' 라던가, '무얼 했던 누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재밌는 사람'이라던가,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회사나 어느 영리조직에서까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것들이 주는 유용함을 버리기에는 나는 돈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소유' 범주가 아닌 '존재' 범주에서의 내가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그 균형이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혹은 오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그런 얘기를 빼고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자주 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그랬다. 라벨이 안 붙어있는 사람으로 나를 자주 설명하려고 했다. 최근 알게 된 한 외국인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너 그런식으로 설명하면 너 마약 거래상인 줄 알아' 라고 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거 같다. 내가 소유한 것이 자랑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는 내가 노력으로 성취한, 소유한 것들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라벨링 되는건 싫다. 그것으로 인정 받으면 그건 그것대로 싫고, 그 것으로 인정받지 못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싫다. 나는 회색 영역의 사람이 되고 싶다. 빠르게 서로를 파악해 위계를 따지고 무언갈 얻어내려는 이 세상에선 사실 뒤지게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지만, 적어도 노력한 만큼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존재'가 되고 싶다.


광고 카피에 한마디 더 얹는다면 '쓸데없이 싸우지 않는다' 라고 하고싶다. 사실 싸우는 것 자체는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각자 얻고 싶은 게 있고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면 싸우는게 맞다. 근데 웃기는 건, 다들 얻어야 할 절박한 필요도 없는데 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수능 때부터 생긴 버릇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대학을 가니까 왜 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좋은 대학 가려는 그 습성이 그대로 트라우마처럼 몸에 남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더 크게 보면, 3 세대만 내려가도 '가난'한 가족들이 넘쳐나는 국가에서 태어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밥 남기면 지옥간다'는 지독한 가난 트라우마를 가진 국가에서 태어난 비애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도 그렇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제 그렇게 경쟁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이제 그만 둘 때라고 느낀다. 이젠 진짜 그만둬도 될 것 같다.


2명이 앉아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짜장면 1그릇이 있다. 나눠먹으면 되지 않나? 배 안 고픈 사람이 양보하면 되지 않나? 방법은 많다. 그러나 가끔 혼자 다 먹어야 한다면서 싸운다. 아니면 나눠먹어도 싸운다. 다음 짜장면을 먹기 위해 면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안 보고 입에 욱여넣은 다음에 벌써 주변을 막 두리번거린다. 최악의 경우는 배도 별로 안 고프면서 일단 짜장면을 먹을라고 막 싸운다. 상대가 3일을 굶었는지 1시간을 굶었는지에 따라 싸움의 원인은 갈리긴 하겠다. 3일 굶주리면 혼자 두 그릇 먹으려고 아득바득 싸우는게 이해가 된다. 굶주림을 함부로 추측하고 재단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싸우는 경우가 있다. 밥이라면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간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굶주림의 크기가 내 뱃속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배고파서 먹는게 밥인데, 왜 밥만 있으면 그렇게 악착같이 입에 넣는걸까. 남이 배불리 먹으면 '배가 많이 고팠나보군' 하면 되고, 남이 하나도 먹지 않으면 '배가 안 고팠나보군' 하고 둬도 되는데. 밥이라면 일단 뛰어들면서 싸우는 경우가 있다. 무섭고 지친다. 지독하게 배가 고픈 순간이 와도 양보정도 하는 사람이 좀 더 멋있을 것 같은데. 쉽진 않겠다. 그치만 그런 사람으로 살고싶다. 세상에 밥이 꼭 짜장면만 있나, 그냥 물 배 채울 수도 있지. 그냥 라면 먹으면 되지. 하루 더 굶지. 그렇게 나의 배고픔을 사랑하면서, 가난을 사랑하면서, 결핍을 끌어안고 살고싶다.


배고픔을 상대적인 곳에서 찾지 말고, 내 배를 들여다보고 '내가 지금 배가 고픈지' 한 번씩만 되돌아 보면서 살자. 쓸데없이 싸우지 말자. 내 갈증을 들여다보고 지금이 싸울 때인지, 양보할 때인지를 잘 분간하는 삶을 살자. 별 것도 아닌 것에 목숨걸고 항상 싸우는 불행을 자처하지 말자.


쓸데없이 싸우지 말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Needle&Gem, 반가운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