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인가 도망인가. 그 한 끗 차이에서

도망쳐서 도착할 또 다른 절망과 불편과 불확실함

by 준마이

지금 가진 것들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금 가지지 못한 것들로 인해 불행한 것도 아니지만, 꿈을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요즘 내가 도망을 치고 싶은 것일지 변화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도통 감을 잡지 못해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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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과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그리 영리하지 못 했던 편이었던 나는 책이라도 더 읽을까 싶어 도서부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별 깊이 없이 시작했던 도서부 활동인 만큼 드라마틱하게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항상 잔잔하게 무언가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시던 사서 선생님께서 스쳐지나가듯 언급했던 문장은 내 뇌리에 꽤 깊게 박혀있다. 정확한 앞뒤 맥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에 의존해보면 한비야 작가님의 어떤 책을 언급하시면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찾아보니, 정확히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라는 말이었을게다.

사전을 찾아보니 도망이란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을 의미한다고 한다. 도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을 곱씹어본다. 나약함, 비겁함, 부족함과 연결된 단어처럼 느껴진다. 관계에서부터 도망치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고민으로부터 도망치고. 가만보면 도망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듣기만 하면 어떤 부정적 감정들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년 언젠가, 친구는 나에게 한참 어떤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내가 지금 도망치고 있는건지 고민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꽤 큰 소리를 떵떵 치면서 친구에게 조언했었다. 도망치는게 왜 문제냐고. 너 산에서 호랑이가 너 죽일려고 달려드는데 도망 안 칠 거냐고. 일단 도망가서 마을로 내려간 다음에 총을 들고 오던가, 마을 사람들을 구해오던가 해서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살아남으려면 도망치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가끔 도움이 된다 라는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며, 나는 친구를 위로해줬던 거 같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을지언정, 일단 살아남을 수는 있다고.

그렇게 말했던 나였는데. 막상 그게 내 고민이 되자 나는 아무런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비겁하게도 무언가를 부정하고 무언가에게 쫓기듯이 도망치고 싶어하는걸까. 아까의 비유를 그대로 가져온다면 나의 호랑이는 무엇인가. 내가 구해와야 할 총은 무엇인가. 내가 도움을 청해야 하는 마을은 어디인가. 나를 도와줄 마을 사람들은 누구일까. 내가 지금 호랑이인지도 모를 대상을 보고선 지레 겁에 질려서 덤빌 고민조차 하지 않고 일단 도망갈 생각부터 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는 정말 모든 고민을 뒷방에 묵혀두고 가장 피상적인 것들을 좇아다니면서 고민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래 고민으로부터 도망쳤다. 이건 확실하다. 그 고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넷플릭스 신작을 얘기했으며 수 많은 릴스를 계속해서 구경했다.

그런데 하나 짚고가고 싶은 점이 있다. 정말 나는 도망을 바랬던 것일까. 나는 변화하고 싶다. 지금이 매우 불만족스러워서가 아니다. 지금대로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도망치고 싶다. 나는 낙원을 바라지 않는다. 낙원에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지 않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싶다. 후회가 없는 삶이 나에겐 성공한 삶이다. 그 곳이 나에겐 낙원이다.

변화란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는 상태 따위가 바뀌어 성질 따위도 함께 변하고 그 모양까지 변화하는 나를 꿈꾼다. 어딘가 정체되어있다고 느낀지가 한참인데, 어디를 손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를 한참이다.

새해가 밝았다. 이제는 새해가 무언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변화하기 위해 하지 않던 짓들을 계속한다. 새롭게 정의되는 나의 개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점점 희미해지는 내 머릿속의 갈증들을 살펴본다. 그 갈증들이 주던 아픔을 다시 헛구역질하며 곱씹어본다. 이내 그 냄새와 맛으로 인해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고는 하지만, 모순적으로도 차라리 그 때의 아픔이 또 그립다.


사전에 따르면 낙원이란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이라고 한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있을 수 없다. 아니 낙원이 있어서는 안된다. 낙원을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낙원을 가고 싶으면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행복과 기쁨만 가득하고, 괴로움이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안락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 다짐을 하듯 살고 싶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 없기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편안한 낙원같은 선택들이 아니었길. 평생을 낙원에서부터 도망치듯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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