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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마니의 회사 생활 Apr 15. 2024

스타트업이 '우리답게' 쓰고, 말하는 방법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 제작기

저는 브랜딩이 뭔지 잘 모릅니다. 

가끔은 그게 디자인인가 싶다가도, 누구는 방향성이라고 말하고, 또 뿌리나 코어, 에센스, 결, 정체성이라고도 표현하니 브랜딩이 뭘 뜻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더라고요. 


우습게도 브랜딩 일자무식인 저는 포자랩스 입사 후에 일종의 브랜딩 업무를 맡았습니다. ‘포자랩스답게' 쓰고, 말하는 방식을 정하고, 책자로 만들어 구성원들과 신규 입사자들에게 제공한 것이죠. 

오늘은 브랜딩 일환으로 제작한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회사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말과 글이야 당연히 홍보 담당자인 제가 챙겨야 할 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치만 ‘우리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아무튼, ‘포자랩스답게' 쓰고, 말하는 방식을 정하려면 먼저 주제 파악부터 해야 했습니다. 

포자랩스는
- 인공지능 기술로 음악을 만드는 회사다 (안)
- (대체로) AI가 뭔지 자세히 모르는 사람을 상대할 것이다 (밖)

회사 안팎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어요. 주절주절 써봐야 정신 사나울 것 같아 짧게 2줄로 정리하려고 노력했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AI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또렷하게', ‘배려하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말하고 써야겠다 싶었어요. 책자에는 아래와 같이 명문화 해두었고요.

 
인공지능 음악을 만드는 우리의 일은 전례가 없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려면 많은 이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죠.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은 우리들의 효과적인 언어 사용을 도울 것입니다.

또렷하게 글 쓰고 있는가?
배려하며 말하고 있는가?
긍정적인 마음을 먹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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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기초한 주제 파악도 중요했지만, 우리는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지도 알아내야 했어요. 그래서 팀원들과 함께 전사 구성원을 인터뷰했어요. 7~8개 질문을 했는데, 대부분 “사랑받는 AI 음악 창작 기술/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질문들이었죠. 5가지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었어요. 

 
집요한 tenacious
인공지능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집요하게 연구합니다.

앞서나가는 prominent
우리는 전례 없는 음악 창작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영감을 주는 inspiring
개발자는 비개발자에게, 작곡가는 비작곡가에게 정보와 지식을 공유합니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함께 일합니다.

즐거운 playful
인공지능 음악 창작 기술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퍼지다 spread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고, 함께 나누어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창작 문화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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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뼈대는 얼추 갖추었고. 이제 구성원 모두가 쉽게 이해하도록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의 몇 가지 예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이렇게요.

 
[시간을 뺏지 않습니다]
X 이 약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O 다음과 같이 용어를 정의합니다.
설명: 불필요한 표현을 걷어냈어요. 문장이 한결 개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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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별 예문까지 작성을 마치고, 디자인 작업에 돌입합니다. 회사에 천재 BX 디자이너님이 있어 디자인 작업은 아주 수월했죠. 덕분에 제 공수는 1도 안 들어갔고요.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 책자는 회사 곳곳에 비치해 동료들이 우리답게 말하고, 쓰는 법을 돕고 있습니다. 신규 입사자 온보딩 자료로도 활용하고 있고요. 

저는 여전히 브랜딩이 뭔지 잘 모릅니다. 

꼴랑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 하나 정했다고 회사의 브랜딩을 완성한 것도 물론 아니고요. 다만, 브랜딩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다움'에 대해 정직하게 묻고 답하며, ‘우리다움'을 조금씩 파악하고 정할 수 있다면, 그게 브랜딩이 아닐런지… 라고 생각했죠. 

저는 30살 넘어 ‘이준환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회사도 설립 초창기부터 뿌리와 코어와 에센스와 결과 정체성을 명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회사가 몇이나 될런지요. 늦었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되는 건 아닐까요. 브랜딩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구요. 


 
<포자랩스가 말하는 방식>의 일부분만 발췌해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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