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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장 폭락 때, 나는 왜 헛구역질을 했을까

진짜 헛구역질로 배운 폭락의 교훈

투자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게임이다
- 벤저민 그레이엄


2025년 4월 2일에 발표된 트럼프의 상호관세로 인해 4월 초의 주식시장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인 듯하다. (역시나 머릿속에 자기 합리화와 망상으로 가득한 미치광이에게 논리따윈 없었다)


전 세계의 주가지수는 급락을 거듭하고 있고, 1년에 2-3번 있는 가슴 아픈 조정의 분위기가 아니라 5년에 한 번쯤 있는 큰 충격, 그것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CNN이 발표하는 Fear and Greed Index도 오랜만에 한자릿수의 Extreme Fear (과도한 공포)의 영역으로 들어섰고, 내가 시장에서 겪어본 가장 큰 충격인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 쇼크 때의 기억과 겹친다.


시장에서는 누구를 원망한다 한들 의미가 없다.

훗날 지금 이 순간을 돌이켜 봤을 때 옳은 선택을 하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며, 시장이 공포에 가득했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며 이번 4월 같은 폭락장을 위한 교훈을 생각해보려 한다.

図1.jpg 2024년 4월과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쇼크 클라이맥스 때의 Fear and Greed Index



코로나로 몸과 계좌 모두 골로 갈뻔한 이야기


2020년 1월, 나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정체 모를 폐렴이 유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웨이보나 샤오홍슈(중국의 트위터, 인스타그램이라 생각하면 된다)를 떠도는 영상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고, 병원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2009년 멕시코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인플루엔자에 걸려 타미플루를 먹으며 뻗어있던 경험이 있다.

폐렴이라고 하니 기침 나고 열 좀내면, 인플루엔자랑 비슷한 전염병 one of them 이겠거니 했다.


오히려 기업본연의 가치에 영향이 없는 외부이벤트로 시장에 충격이 발생하면 공포를 이기고 눈찔끔감고 매수하라는 게 역발상투자대가들의 철칙이다.

인류는 전염병과 함께 살아왔고 이겨내 온 역사가 있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러나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도시를 봉쇄하며 모든 경제활동을 멈췄다.

인류가 망할 것 같은 공포는 주식시장을 박살 냈다.

2020년 연초부터 3월 말까지 S&P500 지수기준으로 -30%가량 하락했다. 주식 지수가 이렇게 단기간에 폭락했으니 반 토막, 1/n 토막 난 개별주는 넘쳐났다.


당시 쫄보 주제에 몇 푼 벌었다고 욕심만 많아진 나는 선물포지션과 레버리지까지 써서 주식을 들고 있었다.

매일밤 미국 지수를 확인하며 헛구역질로 잠을 못 이뤘고 겨우 잠에 들어도 아침에는 포지션 로스컷 알림으로 일어났다.

몸도 마음도 제정신이 아닌 채로 3달을 보냈다.


tvc_da564cd0504d806312179c54f967d446.png 2020년 초~3월 말까지의 S&P500 지수
3472456109875360309_20210903092041332.jpeg 붉게 물들던 그 시절 S&P500 지수종목들


뭐가 문제였을까?

시장은 흔들릴 수 있다. 폭락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과다한 포지션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과다한 포지션은 욕심과 오만의 산물이었고, 내게는 이들을 컨트롤할 리스크관리가 없었다.


이 시절 트위터로 연락하며 지내던 개인투자자 동료들이 꽤나 많이 시장을 떠났다 (나중에 듣기로는 몇몇 분들은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2019년은 일본에서 개인투자자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참 많던 해였다.

높은 수익률에 가려진 무모한 용기가 박수받고, 리스크를 고려해서 얻는 낮은 수익률은 바보취급받았다.

그리하여 리스크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리스크를 생각 안 해도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다. 오히려 더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다.

그러나 리스크관리가 없다면 반드시 시장은 그 돈을 회수하러 올 것이다.



시장은 어떻게 움직였는가?


나의 개인적인 견해를 더하자면, 전염병만이 주식시장을 박살 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의 2020년 초~3월 말까지의 S&P500 지수를 보면, 급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은 시장이 이미 인지했다.

경제가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은 모두가 알았고, GDP가 마이너스성장하고 기업실적이 크게 꺾일 것은 시장은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실물경제가 타격받으면 실업률이 늘어날게 뻔하고, 각국 중앙은행, 각국 정부가 돈을 풀 것을 시장은 예상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금융정책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의 FED위원들은 2월부터 3월까지 경제는 견조하고 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걱정되지만 시장의 안정을 위한 금융완화는 옳지 않다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 자세는 작은 불씨를 큰 화재로 만들었다.


큰 화재가 나고 사태가 심각한 것을 인지하고서야, 4월 초 FED는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금리를 0%로 인하했다.

그제야 시장은 반등을 시작했다.


어떤 불씨를 발견하면 시장은 먼저 반응한다.

다만, 양복 입은 노인네들은 절대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큰 화재가 나고 경제가 활활 타는 게 확인되어 그제야 양복 입은 노인네들은 움직인다.


결국 시장은 양복 입은 노인네들이 북 치고 장구 치는 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양복 입은 노인네들과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아무리 쌍욕을 하고 울부짖어 봐야 들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리스크를 줄이고 노인네들의 삽질을 기회로 승화시켜야 한다.


경험상, 1년에 3-4회 정도는 시장 참여자들의 마음이 흔드는 하락, 조금 크게 빠지면 조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발생한다.

또한 5년에 적어도 한 번은 유럽신용위기(2012년), 차이나쇼크 (2015년), 코로나바이러스쇼크 (2020년), 일본금리인상쇼크 (2024년), 지금의 관세쇼크같이 시장을 빠따로 후두려패는 하락이 있다.


이제 와서 보면 늘 샀어야 하지만 그때는 단기 하락인지 구조적인 시장붕괴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눈앞에 계좌가 눈 녹듯 흘러내리면 공포에 휩싸인다.



1. 평상시 레버리지 쓰지 말기, 숏치지 말기

현물로 투자해서 손실이 나도 최대손실은 투자한 만큼이다.

레버리지를 쓰면 가지고 있는 돈보다 더 잃는다.

숏을 치면 이론적으로 최대손실은 무한대가 된다.

주가가 급변할 때마다 마진콜 받고 증거금을 부랴부랴 마련하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면 그만둬라.


한국인의 미국주식 보유종목을 보면 레버리지 ETF나 인버스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레버리지 ETF는 1% 오를 때 2% 오르지만 (수수료가 붙음으로 1.x% 오른다) 1% 빠질 때 2% 빠지는 게 마치 변동폭만 증폭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대수익률이 손실리스크를 넘어서지 못한다.


2. 현금비중 관리하기

워런버핏할배는 시장이 과도하게 낙관적이다고 판단할 때 과감하게 주식을 팔고 현금비중을 늘려버린다.

물론 그 타이밍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다.

닷컴버블이 터지기 전 2-3년은 기술주투자를 안 한 워런버핏이 시장퍼포먼스를 따라가지 못했고 시장사람들은 세상은 바뀌었고 그가 한물갔다고 비꼬았다.

(그리고 몇 달 후 버블이 터지고 나서는 비꼬았던 사람들이 골로 갔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리먼쇼크 같은 본인이 상상하는 최대의 시장쇼크를 가정하고, 예를 들면 리먼쇼크가 과거 주가 최대치에서 50%가량 하락했으므로


주가지수가 최대치에서

10% 하락 → 현금비중 40% 까지 매수

20% 하락 → 현금비중 30% 까지 매수

30% 하락 → 현금비중 20% 까지 매수

40% 하락 → 현금비중 10% 까지 매수


위의 방식으로 매수의 한도를 정해놓고, 늘 현금을 일정 부분 쟁여놓는 것을 추천한다.

x%에 대한 설정을 본인의 야수의 심장에 맞게 재조정하면 시장에서 나락에 갈 확률은 많이 줄어든다.


3. 기업분석은 평상시에 하고, 매수는 시장이 흔들릴 때 하기

2에서 현금을 쟁여놓고 시장이 빠질 때마다 추가매수를 하는 방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살지를 정해놓아야 한다.

뭘 사야 할지 정하는 방법은 과거에 열심히 써놨으니 참고하시길.



늘 느끼지만, 시장에 큰 충격이 있는 사건, 이번 트럼프의 관세폭탄 같은 경우에는 기업분석을 해놔도 여기도 영향이 있고 저기도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식비중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냥 지수 ETF를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무섭다고 던지지 말기

Last but not least...

이게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멍청한 짓이다.

시장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나도 공포에 질려서 던질 거면 사지를 말자.


일단 팔고 현금을 확보한 뒤 상황을 보겠다는 사람도 많다.

당신이 기관투자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이해한다.

당신이 개인투자자라면 자기 합리화라는 거 다 안다.

상황이 안정화되어서 당신도 이제 다시 들어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 시장은 벌써 다 올랐고 당신이 먹을 것은 남아 있지 않다.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다.

코로나 때 무리하게 시장과 마주하며 헛구역질을 3개월 했더니, 지금도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위산이 역류한다.

돈을 벌어서 전부 병원비로 쓰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발버둥질 아니겠는가?


건강이 상할 것 같다면 이번엔 조금 쉬도록 하자.

맛있는 것을 먹고, 커피 한잔 하면서 좋은 책을 하나 사서 읽어도 몇 만 원이다.

주식으로 몇 백만 원 손해 보는 것에 비하면 작은 숫자다.


시장에 남고 싶으면 멘탈을 챙겨야 한다.

좋은 멘탈은 건강한 신체에서 시작한다.


무리하지 말고,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판단하자.



이 또한 지나간다


나는 과거의 실패 경험이 있어서인지 다행히도 이번 폭락장에서는 레버리지도 없고, 선물포지션도 없다.

현금비중관리를 하면서 평소 연구를 해두었던 주식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매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욕심 좀 부렸다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양복 입은 노인네들이 나쁜 놈들이다.

이것을 경험 삼아 앞으로 리스크를 잘 관리해 나가면 된다.


언제 시장이 회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제 아무리 트럼프라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가 안다.

시장은 반드시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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