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리포트가 도움안되는 이유
주식 시장에는 가격을 논하는 이는 많지만,
가치를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 필립 피셔
이전, 5. 좋은 종목을 고르는 것은 연애와 같다에서 종목 고르기에 대해서 내 의견을 공유한 적이 있다.
특히, 첫인상으로 투자후보 추리기 (롱리스트)에서 '증권사 리포트를 통해 정보를 얻기'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식 투자를 좀 하신 분들이라면 눈치채지 않았을까.
이 점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보려 한다.
실은 나는 대학원 시절 증권사 애널리스트 직종을 지망했다.
당시 나름 개인투자자로서 블로그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을 하면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인플루언서 취급을 받으며 콧대가 높아졌있었다.
외야에서 깨작거리지 말고 이제 메인스트림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일본판 CFA인 CMA (증권애널리스트) 필기시험도 준비하고, 이것저것 공부하며 증권사 취직을 노려봤다.
(생화학과 소속이던 나는 연구실에서 교수한테 실험은 안 하고 쓸데없는 짓한다며 허구한 날 욕을 처먹었다. 이제는 추억이다)
결과적으로 내 능력과 연이 닿지 않아 증권사에 취직은 못했지만, 나름 증권사에서 증권 애널리스트 인턴도 해봤고 기업분석 리포트도 하나 써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를 담당하던 사원은 무급인턴에게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일 시키고 담배나 뻐끔뻐끔 피우러 나갔고, 나중에 공개된 리포트는 내가 쓴 글 그대로이면서 작성자가 그의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 또한 이제는 추억이다. 그 모자란 녀석은 지금 뭐 하려나...?)
읽을 때는 몰랐는데 기업분석 리포트를 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단 업무량이 많다. 재무분석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뉴스나 기업 IR팀과의 인터뷰등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다
논문같이 중립적인 시각으로 인사이트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애널리스트가 제 아무리 인사이트를 가득 채운다 한들 결국엔 애널리스트는 팀장, 팀장은 부장이 OK를 해줘야 한다. 폰트, 포맷 같은 사소한 것부터 Buy인지 Hold인지 모든 게 그들의 취향에 맞춰져야 한다.
인턴 나부랭이가 2 달해서 느낀 게 이 정도인데, 현직 애널리스트는 고충이 더 많을 것이다.
증권사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각오로 소신발언을 하자면, 투자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들의 보고서는 투자로 돈을 버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정리해 보자
증권사는 어떻게 돈을 벌까?
증권사의 사업영역은 크게 3가지다. (홀세일, 리테일 등등 누가 고객이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나눠보겠다)
1) 투자은행: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하는 것을 대행, 발행된 자산을 기관투자자등에게 판매, M&A을 주관 등등 기업을 상대로 그들의 투자활동을 지원
2) 투자자문: 부유층을 중심으로 상속이나 자산운용 등 프라이빗하게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
3) 자산운용: 자사 내에 펀드를 만들어 고객들의 돈을 맡아 운용
사업영역이 어떻든 증권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수수료를 떼먹는 거다.
예를 들어, 기업이 상장을 하려 IPO를 하면 증권사는 적게는 25bp (0.25%) 많게는 300bp (3%) 정도 수수료를 떼간다. (한국은 자본시장의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 이 수수료가 많이 적다)
부유층 상대로 하는 자산컨설팅이나 펀드운용도 수탁자산이 불어나던 줄어들던 맡은 돈의 몇 bp를 고정으로 떼어가고, 기준을 초과하는 수익이 났을 경우 거기서 또 몇% 떼어가는 식으로 돈을 번다.
기본적으로 증권사는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펀드 운용은 투자자에게 주식을 팔기위한 상품이지, 수수료를 받기 위한 일종의 사이드메뉴다.
그래서 그들을 Sell-side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증권사에서 기업분석을 한 리포트의 용도는 명확하다.
주식을 팔기 위한 세일즈도구이다.
리포트에 쓰여있는 기업이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여서 개인투자자든 기관투자자든 고객이 주식을 많이 사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는 구조적으로 Buy만을 외치게 된다. 목표주가를 내리더라도 Buy이다.
위에서 증권사 리포트는 세일즈도구임으로 Buy만 주야장천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과 별개로, 애널리스트 중에서도 직업적 긍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분도 많다.
다만, 그들의 마인드셋이 어떻든 그들의 분석이 구조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를 3개 더 소개해보자.
1) 애널리스트의 조사대상인 기업이 증권사의 고객이기도 하다
IR방문이나 컨퍼런스콜등에 참가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경영자나 실무담당자에게 열심히 질문하며 재무정보 뒤에 있는 정성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리포트로 좋은 주가흐름을 바라는 기업입장에서는 공유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한다. (기업의 주가흐름은 시장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신뢰도이다. 필요한 타이밍에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기업입장에선 높은 금리를 줘야 하므로 몹시 곤란하다)
그런데 애널리스트가 조사한 기업에 Sell을 외친다 쳐보자.
기업입장에서는 주가 떨어지는 소리 하는 양반과 만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만나주지 않으니 경쟁사의 리포트에 비해 기업분석 리포트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주식이나 채권발행, M&A를 할 일이 있다면 기업입장에서 그 증권사를 쓰고 싶겠는가?
같은 증권사라 해도 영업팀 입장에서 그 애널리스트는 애물단지가 된다.
(가끔 Sell을 외치는 강단 있는 애널리스트들은 이렇게 일자리를 잃게 된다)
2) 목표주가는 로또번호 맞추기 수준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 리포트의 ‘목표주가’를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실제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목표주가를 정하는 과정은 상당히 애매하다.
일단 공개된 정보로 재무 모델링을 한다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EPS(주당순이익) 1000원 × PER 15배 = 목표주가 15,000원
이런 식으로 목표주가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문제가 많다.
설정 PER에 근거가 없다. 업계 평균이 15배라고 PER을 15배로 설정해도 되는가?
16은 안돼? 17은? 그냥 20으로 해!
미래 EPS는 얼마나 정확할까? 매출추정, 비용추정을 외부인이 그렇게 쉽게 되는 거면 경영기획팀은 뭐 하러 있는가?
밸류에이션 방법마다 목표주가는 바뀐다. DCF로 계산하면 50,000원, PBR베이스로 하면 8,000원이고, EV/EBITDA 베이스로 하면 100,000원. 그래서 목표주가는 얼마인데?
사실상 애널리스트의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부장님의 한마디로 15,000원을 목표주가로 정해놓고 밸류에이션 계산하는 사람도 많다)
단언컨대 목표주가는 의미 없다.
그게 정확히 계산되면 애널리스트 아무도 밤늦게까지 일하는 월급쟁이 안 한다.
3) 애널리스트가 본인도 모르게 Sell-side에 익숙해져 버린다
"아무리 증권사가 욕을 먹어도 나는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한 훌륭한 애널리스트가 될 거야!"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분석실력을 키워서 자산운용사나 헷지펀드 같은 Buy-side로 옮겨야지!"
라는 야무진 포부를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조직에서 여러 방면에서 치이고 부딪치고 지지고 볶고 하다 보면 훌륭한 Sell-side애널리스트가 되어있다.
주위에 펀드매니저하시는 분들, PE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듣는 그들의 평판은 안타깝다.
내가 보고 들은 한정적인 정보에 의하면, 자산운용사나 헷지펀드로 Sell-side에서 이직하는 분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수요가 많이 부족하다.
그 좁은 문을 치열하게 통과해서 이직에 성공하신 분들조차 90%는 퍼포먼스가 저조하다고 한다. (Again, 이건 들은 얘기다. 이것이 틀린 정보라면 당신이 맞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듣지만, 내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다.
실력 있는 애널리스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능력은 투자를 집행하는 입장에는 장애물이 되곤 한다.
고객을 혹하게 해야지, 본인이 혹해지면 안된다.
그래서 Sell-side와 Buy-side가 같은 금융업이라 해도 전혀 다른 직종인 것이다.
축구에게 비유하자면 메시가 골키퍼하는 꼴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산운용에 가고 싶은 분들이 애널리스트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PB같은 영업이 본인의 앞길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주식을 사는 사람들도 기업분석은 하잖아?"
물론이다. 이게 돈을 굴리는 사람들 (Buy-side)의 일이다.
다만, 돈을 굴리는 사람들은 증권사에서 발간되는 리포트 수준으로 높은 수준의 스토리텔링이나 문서 작성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시간낭비다.
지수연동형 ETF가 아닌 이상, Buy-side는 주가가 오를만한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괜찮을 것 같은 종목이 롱리스트에 100개 있으면 실제 투자할만한 건 8~10개남짓, 확신이 좀 생길만한 것은 5개가 안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 같은 보고서 작성은 깊이 있는 분석은 이 8~10개에만 하면 된다.
분석을 해보면 알지만, "아 얘는 좀 아니구나..." 싶은 친구가 대부분임으로 확신이 생길만한 5개는 힘줘서 분석할 가치가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같은 보고서를 100개 기업에 다 만들었다가는 95개는 헛짓거리가 된다.
자산운용사마다 다르겠지만, 알아야 할것들만 빨리빨리 해야 돈을 번다.
이렇게 Sell-side 리포트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나도 Sell-side의 기업분석 리포트도 훑어본다.
심지어 큰 자산운용사에서는 증권사로부터 훌륭하신 애널리스트를 초빙해서 강의도 듣는다. (강의는 무료지만 강의를 듣고 일정량의 주문을 하는 게 그들의 암묵적인 룰이다)
좋은 정보획득의 기회인건 분명함으로 그 활용법을 제안해 보겠다.
1.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스토리를 비판적 사고로 바라보자
기관투자자들을 혹하게 만드는 게 애널리스트 리포트의 스토리텔링이다.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자.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면 기관투자자는 벌써 돈을 넣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기관투자자에게 먼저 공개된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그게 화가 난다면 고액자산가가 되어 PB (증권사에서 고액자산가 컨설팅하는 사람들)를 쪼아보자)
리포트가 발간된 기업 외에도 같은 스토리가 해당되는 기업이 없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면, 테슬라가 한창 핫하던 시절.
테슬라의 투자 스토리는 판매된 자동차가 아닌 압도적인 전기차 주행거리를 통한 자율주행을 위한 데이터 확보가 자율주행 시대의 압도적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지금 들으면 뭔 소리 싶지만 그 당시는 이게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했다.
그렇다면 PER 1,000배가 넘어가던 테슬라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벨류에이션의 중국 BYD나 WAYMO를 통해 자율주행에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구글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였다.
판매량은 BYD의 성장률이 더 압도적이고, 자동차제조업보다 이미 AI에 대해 충분한 경쟁력이 있던 테크기업이 더 자율주행에 적합하지 않을까? (바둑애호가로서 알파고는 혁명이다!)
그러니, 리포트는 부정은 하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보자.
2. 매크로 경제환경이나 업종별 시황을 주목해 보자
기업 분석에 관해선 증권사는 중립적이기 힘들지만, 경제환경이나 업종별 시황은 그래프로 붙여주기만 해도 아주 훌륭하며 중립적인 정보가 된다.
예를 들면, 철광석가격, DRAM가격 등등 커머디티가격동은 투자를 검토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정보이지만 입수하기 좀 귀찮다.
증권사 입장에선 Bloomberg에서 뽑아온 데이터를 쏙 붙이기만 하면 리포트로 발간하며 세일즈를 할 수 있으니 모두에게 윈윈이다.
공부도 되니까 적극적으로 이용하자.
3. 애널리스트들의 컨센서스에 관심을 갖자
Sell-side여도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분석의 프로이다. (10년전은 기업분석은 힘든 일이지만 확실한 성장이 보장되는 일이라 주니어에게 시키는 추세였는데 요즘은 어떨려나?)
한명의 뷰가 아닌 여러명이 공통으로 갖는 뷰가 있다면, 그 뷰는 시장참여자 모두의 뷰와 동일할 가능성이 높다.
목표주가가 쓸모 없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모든 증권사가 많던 적던 목표주가를 상향시킨다면 그것은 의미있다. 왜 목표주가가 상향되는가를 알아보자. (거꾸로 모든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하향한다면 그것도 중요한 정보이다)
이렇게 길게 써놓고 보니 증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신랄하게 비판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다들 밤늦게 까지 일하시고 고생이 많으신데, Sell 의견을 냈다고 살해협박을 받는 사람도 있는 극한직업이다.
다만 잊지말아야 할것, 우리는 프로다.
동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직업과 목적이 어떤지를 제대로 이해하며 정보를 걸러들으며 성공투자를 하면 된다.
서울대학교에는 서울대학교투자연구회 (SMIC)이라는 투자에 대해 함께 연구하는 학술동아리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치투자를 설파하시는 VIP자산운용의 최준철, 김민국 대표를 포함한 여기 출신 alumni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활약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 명맥을 이어나가는 현재 멤버들이 지금도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다.
학생들이 세일즈를 해야하는 입장도 아닐텐데 Sell-side스러운게 재미포인트이지만, 아무튼 훌륭하게 분석을 해놓았다.
심심할 때 읽어보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 읽어보시길.
(최근 발표된 리포트 중에 내가 잘 아는 기업 아드반테스트가 있어서 아주 반가웠다. 애니멀스피릿 가득한 긍정적인 뷰가 대학생의 패기답다는 생각이 든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