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매력적이지만 뭔가 안 맞는 친구
중요한 것은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당황하면 오히려 나아갈 길을 그르치게 된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 (松下幸之助)
전편 5. 좋은 종목을 고르는 것은 연애와 같다 에서 주식은 연애와 같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이 있다.
성격도 좋고, 다정하고, 대화도 잘 통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서 엇갈리는 친구.
같이 있으면 즐겁고 괜찮아 보이지만, 막상 연애로 발전하려 하면 어딘가 어색한 그런 관계가 있다.
주식 투자에서도 그런 종목이 있다.
늘 저평가되어 있고, 배당도 괜찮고, 안정적인 실적을 내는 기업.
모두가 “이거 진짜 좋은 주식이다”라고 알고 있고, 말하지만, 막상 투자해 보면 수익이 기대만큼 나지 않거나, 타이밍이 안 맞아 자꾸 엇갈리는 종목.
일본 주식을 주로 투자하는 나에게 5대 상사(商社) 주가 그랬다.
항상 매력적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타이밍이 엇갈려 좋은 기억보다 아쉬운 기억이 많았던 종목과의 추억을 소개해보려 한다.
지난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주주서한을 발표하며, 그들이 보유하는 상사주에 대한 지분율을 늘릴 것이라 발표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나는 2월 21일 (금요일)까지 내가 가진 상사주식을 다 팔아치웠다. ^^
왜냐하면 25년 들어서 상사주는 각각 20~30% 하락했다.
보통 이런 흐름이면 "내가 모르는 악재가 있겠지?" 하고 피하는 게 정답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작년까지 좋은 수익률로 나를 먹여 살렸던 보유종목들을 다 팔았다.
그리고 주말 버핏할배가 발표를 한 것이다.
(소신발언을 하자면, 워런 버핏할배도 이 종목들이 단기적으로 너무 빠지는 게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가 본인의 영향력을 이용한 립서비스로 주가 부양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당연히 주가는 반등했다.
수익을 냈지만 기회손실이 빛나서 돈을 잃은 느낌이 드는 투자가 가장 씁쓸하다.
이 글을 쓰는 날 기준으로 어제 (3/17), 버크셔해서웨이는 상사주 추가매입을 발표했다.
그들의 오르는 주가를 보는 내 마음은 가라앉는다
일본의 엘리트 집단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종합상사(総合商社)이다.
이 종합상사는 한국의 대기업 그룹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무역회사’ 수준을 넘어서, 자원 개발, 인프라 투자, 금융, 제조, 유통까지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펼치는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과거에는 단순한 무역 중개업이었지만, 지금은 거대한 글로벌 PE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다.
이들이 직접 원유, 광물 같은 자원을 개발하고, 글로벌 물류망을 운영하며, 소비재부터 산업용 소재까지 다양한 사업에 투자한다.
그중에서도 5대 상사라고 불리는 이토추상사 (伊藤忠商事; Itochu Corp.) , 미쓰이물산 (三井物産; Mitsui & Co.), 미쓰비시상사 (三菱商事; Mitsubishi Corp.) , 스미토모상사 (住友商事; Sumitomo Corp.) , 마루베니 (丸紅; Marubeni Corp.)가 대표적이다.
언뜻 보면 엇비슷한 사업을 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각각 전혀 다른 장단점과 전략,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토추는 오사카의 섬유유통업에서 출발한 배경을 바탕으로 패션 (예: 데상트가 자회사), , 식품, 편의점 (패밀리마트가 이토추의 자회사이다) 등 소비재에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천연가스, 에너지 관련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기업문화도 국가를 지탱한다는 마음가짐보다는 돈 되는 건 다하겠다는 장사꾼의 마인드가 뼛속까지 박혀있다.
반면, 미츠이나 미츠비시는 일본 제국시절의 재벌로서 성장한 배경을 바탕으로 인프라, 에너지, 원자재투자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며, 우리가 일본을 이끄는 엘리트다!라는 자존심과 긍지가 아주 대단하다. (내가 바로 엘리트다! 하던 내 고등학교 친구도 미츠비시에 들어갔지만 더 살벌한 양반들 앞에서 좌절하고 그만두었다. 컨설팅 다니던 시절 나도 헤드헌팅을 받아봤다. 채용팀은 요즘은 워라밸도 좋고 분위기도 유해졌다지만, 근본은 버릴 수 없는 법이다)
어쨌든, 이 기업들은 일본의 근간을 지탱하는 사업임으로, 일본이 망하지 않는 한 이들이 망할 일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펼쳐져있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다.
그럼 주식시장에서도 인기 있는 핫한 종목이었는가? 결코 아니었다.
일본 상사들은 90년대~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기업을 인수해서 무역 중개 수수료를 늘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무역중개업에서 투자업으로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우리도 글로벌 투자자가 되자!"라는 기치 아래, 단순히 무역을 중개하면서 거래 수수료를 챙기는 모델에서, 점차 M&A, 지분 투자, 직접 사업 운영으로 변신하며 본격적으로 사모펀드(PE)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에 상사맨들은 영업에 특화된 양반들이다.
당시에는 M&A와 기업 경영에 특화된 금융 전문가가 전혀 아니었고, 그 결과, 야수의 심장으로 진행하는 무리한 투자 사례가 속출했다.
① M&A를 비싸게 진행하여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고,
② 비효율적인 해외 원자재 투자로 손실이 발생했으며,
③ 수익성이 낮은 사업이 늘어났다
상사들은 투자를 하긴 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 감손 처리가 불가피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주주 입장에서는 "상사가 상사했다"며 쯧쯧거렸고 시장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당연히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 주식시장에서 상사의 주가는 안정적으로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늘 저평가된 상태여서, PER 10배, PBR 1배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배당수익률도 '4%인데 왜 사? 5%도 안되는데' 이런 취급을 받았다.
이들은 일본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기업이었지만, 동시에 주식시장에서 만년 저평가된 종목으로 남았다.
도입부에서 얘기한 올해의 씁쓸한 추억은 처음이 아니다.
일본의 5대 상사는 늘 저평가된 채 푸근한 배당을 안겨주며, 투자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친구들이다.
좋은 기업이지만 주가 흐름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거나, 내가 타이밍을 잘못 잡아 늘 씁쓸하게 인연을 마치고는 했다.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결국 내 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사주와의 인연을 돌아보자.
첫 번째 추억: 2015~2016년 - 원자재와 금융 리스크의 덫
나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덜 영향을 받는 이토추를 늘 선호했고, 지금도 선호한다.
이 시기는 중국 경제가 부동산 과열과 GDP 성장률 둔화 문제를 겪던 시기였다. 자본시장에서 유동성 위기가 커지면서, 이토추가 대주주로 있는 중국 최대 증권사 CITIC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CITIC을 살리기 위해 이토추가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우려가 커졌다.
나는 그때 CITIC 리스크가 있는 이토추보다는 리스크가 적고 배당수익률이 더 매력적이던 미쓰비시와 미쓰이를 더 많이 들고 갔다.
그런데... CITIC리스크는 기우였고, 원자재 가격은 더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배당만큼 손해를 봐서 아무런 수익이 없었다.
두 번째 추억: 2018~2019년 - 미쓰비시를 믿었건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미국에서는 법인세 감세 정책이 발표되었고, 차이나쇼크에서 회복된 글로벌 경제가 다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일본 상사들의 주가도 쭉쭉 올라갔다.
특히 이토추의 주가 상승이 두드러졌다.
나는 미쓰비시 상사 주식을 들고 배당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미쓰비시는 5대 상사 중 가장 규모와 존재감이 큰 기업이었고, 나는 "이 종목이라면 조용히 배당이나 받으며 즐겁게 기다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셰일가스가 문제였다.
셰일가스 보급이 확산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했고, 미쓰비시 상사가 보유한 가스전의 지분 가치가 감손 처리되었다.
그 결과 미쓰비시의 이익이 급감했고, 주가는 반등하지 못했다.
다른 상사들은 꾸준히 주가가 올랐지만, 나는 미쓰비시만 들고 있다가 결국 상승장에서 소외되었다.
또 손가락만 빨다 나왔다...
세 번째 추억: 2020~2022년 - 워런 버핏과의 시선 차이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던 2020년, 워런 버핏이 뜬금없이 일본 5대 상사의 지분을 샀다는 뉴스가 떴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할배 일본을 잘 모르네... 세계 경기가 아직 회복되려면 멀었는데 무슨 상사야?"
하지만 버핏의 투자 철학은 단순했다.
① 일본 상사는 만년 저평가된 기업이었다.
② 실적은 탄탄했고, 높은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이었다.
③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오면 실적이 폭발할 수 있는 구조였다.
버핏은 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회복되었을 때 "누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 답을 일본 상사에서 찾았다.
당시 나는 "버핏이 일본 상사를 오해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시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본인이 일본에 투자를 함으로써 역사와 전통의 저평가가 해소되는 트리거가 될 수 있음을 할배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고, 인플레이션과 함께 상사들의 실적은 급등했다.
주가도 수직 상승.
나는 또다시 타이밍을 놓쳤고, 버핏은 일본에서 또 한 번의 성공적인 투자를 기록했다.
네 번째 추억: 2023~2024년 - 다시 타이밍이 어긋나다
2022년 미국의 금리인상 속에서 미국은 주식시장이 맥을 못 추리는 반면, 일본 시장은 나름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왜냐면 팔고 나갈 외국인들은 이미 잔뜩 나가있던 상황이고, 저금리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이어진 나머지 금리를 못 올리는 매크로 환경이 아주 매력적이던 상황이었다.
나는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덜 받는 이토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로 일본의 내수경기는 서서히 회복되던 상황이라 이번이야 말로 이토추에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2023년부터 일본 시장에서는 자본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산 압축과 자사주 매입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토추도 그 선봉장을 자부하며 자사주 매입등 주주환원을 늘리기 시작했다.
다만....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미쓰이와 미쓰비시는 소비재 중심의 이토추보다 더 많은 돈을 쓸어 담았고, 쓸어 담은 돈으로 주주환원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진행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이토추는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었고, 홀로 주가가 기어가고 있었다.
(오르긴 올랐지만 다른 친구들이 2,3배 오르는 사이 몇십% 밖에 못 올랐다...)
그러던 와중… 나는 참다못해 미쓰이에 들어갔고, 그때가 정점이었다. (참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다. 이렇게 또 시장의 카나리아가 되어 버렸다)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미츠이 주식은 고점에서 30% 이상 빠졌다.
결국 2024년 유일한 손해는 미츠이에서 발생했다.
돌이켜보니, 제대로 공부하며 주식하던 2015년부터 줄곧 상사주를 만져왔다.
통산을 해보면 벌어들인 수익도 많지만 손해도 많았고, 기회손실이 유난히 눈에 띄는 투자기록이다.
늘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성하며 개선해 왔지만, 계속 새로운 문제점과 마주하게 되는 게 상사주 투자였던 거 같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계속 이어나가는게 주식 투자아니겠는가.
이번에도 버핏할배는 옳았다. 어찌 나의 투자실력이 워런버핏 할배에 비할 바이겠는가.
내가 겸손함을 잃고 경거망동할 무렵, 나를 다시 겸손하게 만들어주시는 길잡이시다.
10년 후, 50년 후, 누군가도 나를 보며 길잡이로 삼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