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너덜너덜한 유치원생
우리 아이가 유치원(유치원 결정과정 (1)에서 언급한 ’ 일반-A 유치원‘)을 처음 다녀오고 하원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아기 뻐꾸기 날개가 너덜너덜해졌어. “라고 했다. 아이한테서 이런 표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제대로 된 기관 생활이 처음인데 아침에 울지도 않고 셔틀버스 타고 오전, 오후 수업까지 다 듣고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온 것만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안아주었는데, 아이의 첫마디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는 편인 아이이기도 하고, 나는 당시에 삼 년을 넘게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하다시피 하다가 처음으로 가장 길게 헤어졌다가 만난 직후라 아이의 피로감이 깊이 느껴졌다.
아이가 유치원 가기 일주일 전 즈음 담임 선생님과 연락할 일이 있었다. 한 반에 다섯 살 아이들만 22명 정도 되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가 끼칠 민폐 행동들이 우려되는 것들이 있어서 선생님께 몇 가지 걱정거리에 대해 문자로 남겼다. 문자를 보시고, 심각성을 느끼셨는지 전화를 주셨다. 기관 생활이 처음인 아이가 종종 오는데, 그럴 경우 적응하는데 반년 정도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내가 걱정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공감하고 같이 잘 풀어가 보자고 하셨다. 집에 있었던 시간이 길고, 밖에 외출을 해도 화장실을 갈 때는 내가 도와줬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 혼자 가기부터 걱정되었던 상황이었고, 그 외에도 밥을 잘 안 먹으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은 선생님께서 불편하지 않으시면 한 두 번 먹어보라고 말씀만 해주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다. 화장실 문제는 “훌륭한 어린이의 변기 사용법”과 같은 책도 요즘 열심히 보는 중이니 이 부분을 응용해서 커뮤니케이션해주시면 금방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든지, 아이가 아무래도 단체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 수칙 같은 것을 모를 수 있는데,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기다리게 해야 하시거나 지금은 안된다고 하셔야 할 텐데, 그때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면 효과적인 지도 말씀 드렸다. 사실 이렇게 소통하는 것 자체가 선생님께 부담이 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 아이같이 기관이 처음인 아이가 드물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2년 내내 기관을 안 보냈지만, 우리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1-2년 정도 어린이집 생활을 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달 정도 한두 시간 어린이집에 보내서 아이가 기관에 가면 어린이 화장실이 따로 있고 친구들은 그곳에서 소변을 본다는 것도 눈으로 꽤 보고, 우리 아이도 소변을 본 적이 있기는 했다. 짧지만 그 시기에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도 내가 유치원 생활이 걱정돼서 잠깐이라도 보내려고 한 의도는 이해하고 계셔서 이런 부분들을 신경 써 주셨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어린이집에 보내지는 않았지만, 종종 집에서 애 보는 것 힘들지 않냐고 걱정도 해주시고, 아이랑 이렇게 놀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선생님도 힘 내시라고 하면 우리 아이가 집에서 즐겁게 잘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응원도 해주셨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단체 생활 자체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는데... 다섯 살 아이는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꽤 컸고, 지금은 조금 어려워할 수 있지만, 몇 번 부딪히면 금방 해 낼 것이라고 믿었다. 대신 선생님께서 처음에 놀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은 드렸고, 이 부분에 대해서 선생님께서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주셨다.
그런데 3월 2일에 실제로 부딪혀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상처받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우리 아이 때문에 힘드셨던 것이 너무나도 느껴졌다. 이미 내가 선생님께 SOS를 청한 상황이라 선생님도 수업이 끝난 뒤,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주신 것 같았다. 오늘 우리 아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꽤나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런 케이스를 겪어본 적은 있으셨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원에 적응을 하려면 적어도 한 달에서 길게는 반년이 정말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유치원에서 기대하는 아이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수업 시간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는 것이 가장 큰 요지였다. 아이가 꽤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교실을 뛰쳐나가려고 해서 안전 상의 이슈 때문에 너무 걱정이 됐고, 이런 것들이 수업 진행하는 데 있어 힘든 부분이었다. 영어 수업을 할 때는 아이가 스트레스가 폭발했는지 마스크도 벗고 책상에 올라가기도 하고 매우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셨다. 줄 설 때도 쉽지 않았고 등등.
항상 엄마랑만 같이 다니다가 혼자서 여섯 시간 정도를 버틴 것도 처음인 아이라 유치원이 즐겁지 않으면 이런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난 사실 유치원은 좀 재미있을 줄 알았더니... 내가 보냈던 유치원은 학습 위주의 유치원이었다. 개학 첫날부터 영어 수업도 했다니... 사실 좀 충격이었다. 내가 유치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보냈구나 싶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녀온 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비몽사몽 상태였고, 나는 아이를 토닥이며 재우며 유치원에 대해 다시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업 분위기를 살펴보니, 그곳은 내 기준에서는 유치원이라기보다는 학원 같은 느낌이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이들 책상을 띄엄띄엄 놓고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있게 한 뒤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고, 앉아서 하는 학습지를 잘 해내는 아이들이 잘 견딜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난 유치원은 뛰어노는 곳인 줄 알았는데... 완전 잘못 알았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첫날은 다른 애들도 교구 다 꺼내서 어지르고 해서 오후에는 그냥 애들이랑 다 어지르고 놀았다고 하시며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통제가 잘 안돼서 정신없었다고 하셨는데, 기본적으로 유치원 분위기가 그렇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도 비슷했다. 선생님께서는 또 전화를 주셨다. 그래도 첫날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셨다. 당시 이미 유치원을 보내고 있는 내 친구도 같이 알아봐 줬는데, 유치원 분위기가 학습, 영어를 강조하는 것 같다면서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찜찜하면 다른 유치원을 좀 돌아다녀보라고 하면서. 가보면 느낌이 올 거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즈음 오며 가며 인사하고 알게 된 동네 엄마와도 각자 보낸 유치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보낸 유치원은 주입식 교육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엄마들한테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곳을 다니면 초등학교 선행학습을 한 것과 같이 모든 영역을 챙겨주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가 신경을 안 써도 아이가 유치원 졸업할 즈음되면 글도 다 읽고 쓰고, 수학도 어느 정도 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하고, 줄넘기도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는 곳이라면서 기관이 처음이면 정말 아이가 힘들어 할 수 있다고 해주었다. 첫 날도 둘째 날도 아이는 힘들어했고, 둘째 날에는 아이가 “영어만 안 하면 좋겠어.”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틀 연속 우리 아이가 마스크를 자꾸 벗으려고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 아이는 마스크를 수용한 뒤로 단 한 번도 마스크를 내가 벗어도 된다고 하기 전에 먼저 벗어버린 적이 없었던 아이이다. 책상에 올라가는 것도 교실을 뛰어다니거나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행동도 우리 아이가 아무리 자유 영혼이라고 해도 나랑 무언가를 할 때 그 정도까지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관을 거의 안 보내기는 했지만, 어린이집에 한 달 정도 한두 시간 보내본 적도 있고, 아이가 분리 수업이 이제 가능한지 살펴보려고 분리 수업을 두 번 정도 해본 적이 있었다. 물론 분리 수업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놀이 수업이었다. 이때 보였던 아이 행동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온몸으로 아이의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마치 몸이 연결되어서 스트레스가 모두 전이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틀 동안 잠도 잘 못 잤다.
두 가지 중에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런 딱딱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살아갈 텐데 그냥 지금 이 분위기에 적응을 시킬까. 아니면 아직은 어리니까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의 교육 기관을 찾아볼까.
지금은 조금 삐걱대지만 사실 이렇게 하루하루 아이와 내가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한 달 정도 느끼면 어느새 아이는 이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잘 다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남편에게 아무래도 다른 유치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 아니냐며 한 달 정도는 다녀보지 그러냐고 했다. 남편 생각도 이해는 됐다. 사실 아이에게 적응할 시간도 주기 전에 내가 너무 급하게 여기는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됐다. 하지만 한 달을 다녀보고 결정하면 아이가 이 유치원에 계속 다니게 될 것 같았고, 그냥 이렇게 살아갈 아이의 삶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성향과도 좀 맞아야 하는데, 우리 아이와 나는 좀 자유롭게 삼 년 넘는 시간을 보냈었기에 이렇게 딱딱한 분위기가 이이도 나도 싫었던 것 같다. 처음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동네 엄마가 내 고민을 이해하고, 주변 유치원 분위기를 알려주면서 병설유치원을 추천해 줬다. (유치원 결정과정 (1)에 나오는 ‘병설-A 유치원’을 추천해 주었다.)
일반유치원 등원 3일 차. 아이가 유치원 간 사이에 병설-A 유치원에 무작정 찾아갔다. 이곳이 내가 꿈꾸던 유치원이었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삼일동안 엉뚱한 곳에 가서 고생을 한 아이한테 미안해서.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