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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Apr 27. 2023

유치원 결정과정 (3)

삼일 만에 그만둔 유치원. 병설 유치원에 안착.


바로 병설 유치원에 가게 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했더니, 꽤나 빡세게 수업을 하는 일반 유치원에 보냈던 삼 일이 아직도 한 달처럼 느껴져서 삼일 동안의 나의 생각의 흐름부터 다시 자세히 적어보고자 한다. 유치원을 고민하는 엄마들 중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육아 중인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첫째 날

유치원에 처음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날.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타고 가주었다. 셔틀버스를 네 명의 친구와 함께 타서 분위기가 활기찼다. 한 친구가 울기는 했지만. 우리 아이는 오히려 "계란말이 버스"라면서 신나게 타고 갔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치원에 가기 두 달 전부터 아이와 "계란말이 버스"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었다.)



돌아오는 셔틀에서는 꾸벅꾸벅 졸면서 온 것 같았는데, 혼이 나간 것 같은 모습으로 내렸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엄마, 아기 뻐꾸기 날개가 너덜너덜 해졌어."라고 했다. 당시에 뻐꾸기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아이가 스스로를 뻐꾸기라고 지칭하면서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참 귀엽기도 하고, 많이 짠했다.


어찌 되었든 유치원 가기 전에 두 시간 이상 분리되어 본 적도 없었던 아이가 9시 즈음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3시 즈음까지 버티고 와 주었다.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이가 울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개학 전 날 선생님께 아이가 너무 통제가 안되면 일찍 데리러 가보겠다고도 말씀드렸었다. 기관에 제대로 보낸 적이 없어서 분리된 적이 없었을 뿐 세 돌 전후로 분리 불안은 확실히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분리 불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지만, 혹시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아이가 방해되면 안 되니까 그런 경우에는 데리러 가려고 했었다. 선생님께서 노력해 주신 덕분에 아이는 여섯 시간 정도의 시간을 말 그대로 잘 버티고 온 것이다.


아이한테는 정말 잘 해냈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온 뒤에 정신을 못 차렸다. 매우 피곤할 때 보이는 행동들을 했다.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았다는 신호이다.


아이의 행동, 눈빛, 말투만 봐도 낮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가늠이 됐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즈음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가장 먼저 아이가 마스크를 벗고, 쓰지 않겠다고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교실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행동을 보이는 등 여러 가지 통제가 안 되는 행동들이 나타나기는 했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첫날이라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제가 안 되는 분위기였다고도 하셨다. 다만 마스크를 안 쓰려고 하는 것과 문을 열고 나가려는 행동은 안전상의 이슈가 있는 행동이니 어머님께서 아이에게 이 부분은 아이와 같이 이야기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 말씀대로 아이와 소통을 했더니, 아이 행동을 통제하기 수월했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팔로 크게 엑스를 만들어서 안된다고 확실하게 알려주시면 좋다거나, 아이가 숫자를 좋아하니까 기다리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잘 못 기다릴 때는 숫자를 세면서 기다리게 해 보시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아무래도 유치원에서는 안 되는 행동,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많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을 드렸던 부분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우리 아이가 어쩌면 너무 가정보육을 오래 해서 단체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아니야.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닌데... 나랑 있을 때나 한두 시간 정도 분리 수업을 할 때는 그 정도의 거부 행동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거지?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던 거지? 유치원이라는 곳이 이렇게 Big Jump를 요구하는 곳인가? 이 유치원이 맞나? 기관 선택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것이 첫째 날의 결론이었다. 선생님도 같이 노력해 보시려고 하고, 이런 경우가 유치원에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닌 것 같으니, 노력해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여기서 바로 나의 결단으로 그만 두면 왠지 '포기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기관에 다닌 경험이 없는 아이가 유치원에 오면 반년 정도의 적응 기간은 가져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섯 살 반은 다른 아이들도 유치원에 다니다 온 것이 아니라, 보육 위주의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온 것이라 어린이집을 다니다 온 아이들도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을은 되어야 수업도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그즈음 의미 있는 교우 관계도 형성된다고 하셨었다.


'아이와 내가 언젠가는 겪어야 할 통과의례인가.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치원이라는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도 아이도 여기에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린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라는 것도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까 더 어려운 것이 당연할지도 몰라.'라고 되뇌었다.


아이에게 둘째 날은 유치원에 가서 딱 몇 가지만 잘하고 와보자고 했다. 마스크 잘 쓰고 있기.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기 등등.


둘째 날

아이는 이 날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가 주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으니, 몸도 편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더 아픈 느낌이었다. 어쩌면 3년 반의 가정보육이 끝나면서 긴장감이 풀리면서 몸이 아팠던 것일 수도 있다. 아이 키우는 것은 참 쉬운 것이 없구나 싶었다. 기나긴 가정보육도 힘들었는데, 유치원에 보내보니,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아이는 수업 시간을 잘 버티고 와 주었고, 셔틀버스에서 내리면서 또 같은 말을 했다. 오늘도 아기 뻐꾸기 날개가 너덜너덜 해졌다면서. 셔틀버스에서 소변을 참고 오느라 고생한 것 같아 얼른 집에 가서 소변을 보게 하고, 아이랑 이렇게 저렇게 노는데, 여전히 아이가 짠했다. 아이는 나름대로 정말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꽤나 허용적인 엄마로 아이를 오랫동안 품에 끼고 키우면서 아이가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하는 상황, 아이 입장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규칙을 지켜야 하는 상황을 거부할까 봐 걱정한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놀이 시간을 지키는 것부터가 걱정됐었다. 아이는 나랑 밸런스 자전거를 두세 시간씩 타고, 모래 놀이를 두세 시간씩 하고, 공원 산책을 두세 시간씩 하면서 놀았으니까. 그러다가 아이가 꽂히는 것이 생기면 무한 반복하고.


이런 나에게 주변에서도 가끔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다 받아주면 안 된다.', '아이가 기대치가 높아진다.',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하는 때가 있다고 알려줘야 한다.',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못할 때가 있어야 한다.'


여전히 나는 '아이가 엄마랑 놀 때 굳이 시간제한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하고 나면 더러워질 집이 걱정된다고 그 놀이를 제한할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아이랑 이렇게 함께 해주는 것은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서 적어도 세 돌까지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해주려고 한 것인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 돌 전 아기에게는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내가 지칠 때까지 놀았던 편이다. 굳이 아이에게 지금 놀이를 그만해야 한다고 해서 아이가 울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냥 더 놀면 됐으니까.


이렇게 자유롭게 놀았던 아이에게 유치원을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충격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시간표대로 유치원에서 요구하는 활동을 해야 하는 그 상황 자체가 답답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보낸 유치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빡셌다. 개학 날부터 매일 한 시간씩 영어 수업도 꼬박꼬박 했으니까. 그런데 이 유치원뿐만 아니라 내가 설명회를 갔었던 다른 일반 유치원도 매일 영어 수업이 있다고 했었다. 다만 그 유치원은 아이가 수업을 싫어하면 그냥 혼자 놀게 둔다고 하시기는 했었다. 요즘은 아무래도 영어 학습에 관심이 많아서 유치원이 이런 것에 발맞춰 커리큘럼을 짜서 그런 것 같다. 이틀 사이에 아이는 이미 가족, 과일 이름을 영어로 배운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는 둘째 날 잠들기 전에 "영어만 안 하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잠들었다. 선생님이 진행하시고, 무언가를 따라 해야 하는 일방적인 수업이 싫었던 것 같았다. 나도 다섯 살에게 그런 수업을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영어 유치원은 전혀 보낼 생각이 없었고, 학습 위주의 유치원도 생각도 안 했는데, 내가 보낸 유치원이 이 동네에서는 학습 위주의 유치원으로 유명했나 보다. 그리고 동네 엄마가 이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을 주면 다시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우니까 쉬는 시간을 일부러 주지 않고, 계속 끝없이 활동을 시키는 곳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엄마가 된 친구가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나 활동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초등학교 1학년보다 빡센 것 같다고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한테 유치원 가기 싫다고 하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다. 힘들다고는 했지만.


둘째 날도 어김없이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그래도 다행히 하루 만에 많은 부분이 차분해졌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첫째 날은 아이가 영어 시간에 수업에 대한 거부 반응이 심하게 나타났다고 하셨는데, 둘째 날은 첫째 날보다는 수업에 좀 더 참여하기도 하고 했다고 하셨다. 나의 이런저런 아이를 소통하는 팁에 대해서도 실제로 적용해 보시고, 효과가 있었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마스크를 거부해서 그건 여전히 걱정이라고 하셨다. 2022년 봄 당시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선생님과 함께 셋째 날 아이가 지키면 좋을 것 같은 행동 두세 가지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매일 이렇게 선생님과 노력하면 아이는 한 달이면 적응을 해낼 것 같기는 했다. 어머님이 진심으로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선생님도 노력해 보겠다고 하면서 열정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참 좋은 분 같았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실 것들은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고, 실제로 노력도 해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고생해서 남들이 말하는 적응이라는 것을 하고 나면 아이의 삶이 어떨까 싶었다. 다섯 살의 삶이 이렇게 빡빡할 일인가. 그리고 선생님께도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것 같고, 반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한 반에 아이가 22명 정도 됐는데, 우리 아이한테 이렇게 신경을 쓰시면 얼마나 고달프실까 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이틀 동안 혼자 인터넷 검색도 하고, 동네 엄마, 학부모인 친구와 대화도 나눠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간 유치원은 내가 생각한 '꿈과 희망이 가득한 유치원'이 아니었다. 꼭 학원 같았다. 그런데 이 유치원은 왜 인기가 많지 싶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잠도 잘 잘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아이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같다면.

아니, 아이가 나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면.

이것을 감내하게 하는 것이 맞나.

이게 정말 사회생활일까.

해내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다섯 살은 아직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땅 파고, 개미집 만들고, 의사놀이 하고, 동요 부르고, 술래잡기하면서 놀 나이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데.

이제 더 이상 이런 유치원은 없나.


아무래도 아직 직접 가보지 않은 병설 유치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기관 경험이 적어서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유치원이 문제인 것 같았다. 내 이틀의 고민을 들은 동네 엄마가 추천해 준 곳인데, 그 엄마도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낸 유치원만큼 빡센 유치원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여기를 가보고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지금 보낸 유치원에서 남들이 말하는 적응을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날,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서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셋째 날

친구가 아이들이 점심시간이 끝나면 운동장에 나와서 뛰어놀 수도 있으니까 그즈음 한 번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유치원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거라고. 가보면 느낌이 올 것이라고 했다. 친구 말대로 그즈음 갔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지는 않았다. 유치원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유치원 관계자 한 분을 마주쳤다. 그날은 정신이 없어서 그분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그 유치원의 원감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분께 지금 아이를 보내고 있는 유치원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서 "요즘 유치원이 다 이런가요? 다 영어를 가르치고 그러나요?"라고 다짜고짜 여쭤봤다. 그리고 "저희 아이가 거의 기관 경험이 없는 상태이고, 저는 그동안 아이랑 많이 뛰어놀고 '책 읽고, 놀이하고'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까 그분이 "요즘 흔치 않은 아이네요."라고 하시면서 "어머님이 참 잘 키우신 것 같네요. 아이들은 지금 그렇게 학습할 시기가 아니죠."라고 하면서 유치원 교육의 문제점과 유아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지점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실 원감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유치원 상담을 해주시는 것 같지는 않고, 유치원 상담 요청이 오면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이 따로 계신 것 같았는데, 내가 너무 다급하게 이야기하니까 원감 선생님께서 나를 유치원 안으로 안내해 주시면서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꺼내 주셨다.


그리고 유치원 교육 철학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놀이 중심 교육.


수업 사례를 보니, 느낌이 딱 왔다. '상자가 아니야' 책을 읽고, 아이들이 주도해서 책에 나온 것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사례로 적혀 있었는데, 이미 잘 알고 있는 책이었고, 아이들이 참 즐거워 보였다. 우리 아이가 집에서 항상 나랑 놀던 방식이었다. 그 과정을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좀 더 멋지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수업. 내가 꿈꾸던 유치원이었다. 그리고 한 반의 학생 수도 10명 정도라 단체 생활에 안착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었다. 이런 유치원이 아직 있어서.

눈물이 났다. 아이에게 미안해서.

내가 3일 동안 도대체 어떤 곳에 아이를 던져둔 것인지.


설명을 듣는 순간, 이미 나는 마음을 결정했다.

이 유치원으로 옮겨야겠다고.


셔틀버스가 안 다녀서 내가 조금 더 힘들어지겠지만 이 유치원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런 의사결정이 빠른 편이다.


원감 선생님의 진심 어린 상담이 끝난 뒤, 바로 입학 원서를 달라고 말씀드리면서 당장 유치원을 옮기겠다고 했더니, 남편이랑도 상의해 보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이미 제가 이 정도로 마음먹으면 유치원을 옮기는 것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드렸다.


나오는 길에 놀이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이 즐거워 보였다. 원감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도 이 유치원에 오게 되면 바로 잘 지낼 것이라고 하셨다. 오히려 '아이들이 왜 유치원에 적응을 해야 하죠? 아이들이 와서 즐겁게 놀아야 하는 공간인데. 다들 잘 다니는데...'라고 하시기도 했다.


나는 유치원 문을 나서면서 바로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은 이 정도면 이미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 대신 이번에 결정한 유치원에서 또 옮기지만 말자고 했다. 남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교육 기관은 웬만하면 한 번 결정한 곳에 긴 호흡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하원한 뒤, 내가 먼저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유치원을 옮겨야 할 것 같다고.


아이의 유치원 적응을 진심으로 응원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괴로웠었다고 말씀드렸다. 다만, 유치원을 옮기는 것 때문에 선생님께 혹시나 불이익이 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고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도 어머님께서 유치원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도 삼일 동안 최선을 다했고, 아이도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 가는 모습이 보이기는 해서 한 달이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가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단체 생활 경험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셨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선생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옮기는 기관에서 아이가 잘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살펴보실 필요가 있다고 덧붙여 주시기도 했다. 그냥 잘 지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셨다.


내가 어떤 엄마인지, 우리 아이가 어떻게 컸는지도 선생님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셔서 나와 우리 아이가 다른 기관에서 잘 적응하고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해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짧은 시간 동안 큰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참 감사했다. 유치원의 교육 방침이 나와 맞지 않았을 뿐 선생님은 좋은 분 같았기 때문이다. 부디 내가 그만둬서 선생님께 불이익이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가 그만둬서 많이 편해지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나는 아이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심장의 두근거림도 사라지고,

아이도 나도 다시 편안하게 놀고,

잘 잘 수 있었다.



일주일 공백기

유치원을 옮기는 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행정처리에 시간이 걸려서 아이는 일주일 정도 나랑 놀다가 새로운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프로 가정 보육러인 나는 아이랑 며칠 만에 다시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아이랑 상상나라에 놀러 가기도 하고, 여느 때처럼 공원에 가서 뛰어놀기도 하고, 알차게 재미있게 보냈다.



새로운 유치원 첫째 날

아이가 유치원 정문까지 엄마랑 함께 가니까 좋다고 했다. 유치원이 끝난 뒤에 데리러 갔는데 아이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오늘 뭐 했어?"라고 물으니, "재미있는 거! 신나는 거! 알록달록한 거!"라고 답했다. 유치원이 이런 곳이어야지 싶었다. 아이의 표정과 아이의 말 한마디만 들어도 낮에 얼마나 잘 보냈을지 알 수 있었다. 굳이 선생님께 아이가 유치원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행정처리 때문에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두 가지만 여쭤봤다. 아이가 마스크를 벗으려고 하거나, 교실문을 열고 나가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는지. 전혀 그러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런 행동을 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듯이 대답하셨다.


이제 됐다.

마음이 놓였다.

아이 표정, 말투만 봐도 오늘은 안 그랬을 것 같았다.


아이가 "아기 뻐꾸기 날개가 너덜너덜해졌어."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내가 보내게 된 유치원은 운 좋게도 시설도 좋고, 선생님도 좋고, 매일 이루어지는 놀이 수업도 정말 좋다.


이런 유치원을 무료로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지금까지 낸 세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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