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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May 15. 2023

잔소리 무용론

아이와의 짧은 대화 중.


나 : 준이야 밥 먹을래?

준이 : 아빠 오면.

나 : 아빠 늦게 오는데?

준이 : 그래도 조금 있다가 먹을래.


잠시 뒤 아이가 레고를 분해해서 조립하기 시작했다. 요즘 레고 조각을 입으로 분해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러 번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그게 더 잘 돼서 그런지 점점 더 적극적으로 입으로 분해를 하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저것도 결국은 내 잔소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한 번 다치든지 누가 다치는 것을 보든지 해야 멈추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잔소리 무용론’에 대해서 혼자 생각했다. 꽤 여러 번 말했는데 고쳐지지 않으면 그것은 천 번의 잔소리로 고쳐질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라는 생각이 나의 ‘잔소리 무용론’이다. 누군가는 고쳐질 때까지 잔소리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시기도 하지만. 이건 내 스타일이다. 경험적으로 이러나저러나 특정 시기가 되면 아이의 행동은 적당히 조절되어 있었다. 잔소리의 횟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말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느끼는 때가 되면 알아서 교정된다.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몇 번 반복해서 지적할 필요는 있지만. 지적을 해도 안 고쳐지면 실랑이가 심해지고 과도하게 화를 내는 상황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사실 몇몇 문제에 있어서는 수백 번 잔소리하다가 화도 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적당히 잔소리하고 두고 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가 요즘 감기 기운때문인지 입맛이 없는 것 같아 디저트를 먼저 먹기로 마음 먹었다. 밥 먹을 생각이 정말 없어 보여서 사과라도 깎았다.


나 : 준이야 진짜 배 안 고파? 밥 안 먹어도 돼?

나 : (레고 조립 중이라 대답 없어서 또 물어봄) 준이야 밥 안 먹어도 돼? 엄마는 준이 배고플까 봐. 배 안 고프면 안 먹어도 돼.

준이 : 응 안 먹어도 돼.

준이 : ‘물어봐서 미안해.’ 해.

나 : 미안해. 근데 왜 미안해야 해?

준이 : 레고 만드는데 방해돼서.

나 : 하하하하하 맞아. 엄마도 뭐 하는데 누가 자꾸 물어보면 싫어.

준이 : 내가 더 그래.

나 : 준이야 그래도 엄마가 엄마들 중에서는 잔소리 안 하는 편이지?

준이 : 응! 그런 것 같아. 잘하고 있어.

나 : 하하하하하. 잘하고 있다고? 근데 엄마도 그 마음 너무 잘 알아. 엄마도 잔소리 듣기 싫어. 그리고 엄마도 뭐 하고 있는데 누가 자꾸 물어보면 싫어.


버릇없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난 아이 마음이 정말 이해된다. 나도 누가 내 육아에 참견하는 것도 정말 싫고, 평소에도 지적받는 것도 잔소리 듣는 것도 정말 싫다. 잔소리 안 듣게 미리 알아서 조심해서 행동하는 편인데, 육아를 하면서는 사실 아이의 행동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들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많아져서 종종 괴롭다.


이 대화를 나는 정말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한 대화인데, 이것을 문제 삼는다면 그 소리도 조용히 듣지 않겠습니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이라 생각하실지도.




다행히 남편이 퇴근하고 아빠가 레고를 그렇게 입으로 분해하다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고 해서 아이가 당분간 레고 분해를 입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이 행동을 위험하다고 적당히 주의만 주고 넘어간 것은 스스로 하려고 하다보니 생긴일이기도 했다. 저 행동을 멈추게 하려면 레고 분해는 내가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 손으로 레고 분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른이 손으로 해도 잘 안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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