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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Apr 25. 2023

친정 엄마가 생각나는 순간들 (2)

애벌빨래를 하다가 오늘도 엄마가 생각났다

애벌빨래

남편 셔츠 애벌빨래를 하다가 엄마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내 블라우스 단추에 뭉쳐있던 파란 비누 조각이 떠올랐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비누 조각을 떼서 입다가 언젠가는 엄마에게 빨래할 때 단추에 비누 조각이 끼지 않게 할 수는 없을지 여쭤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조금은 짜증스럽게 말했었지 않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죄송한 순간이다.


아침에 교복을 입을 때 옷걸이에 걸려있던 깨끗한 블라우스를 휙 입고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귀찮게 먹고 나가던 나였는데.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너무 잘 안다.


매일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모두 엄마가 부지런히 움직이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참 티가 안 나는 집안일.


그래서 우리 엄마는 그러셨다.

집안일 열심히 하지 말라고.


엄마, 집안일은 열심히 안 하려고 노력 중이야.

잘하고 있지?



뒤집혀도 사용 가능한 양면 세탁망 (feat. 다이소)

오늘은 빨래를 하다가 엄마 생각이 많이 났던 날이다. 빨래망 중에 하나가 양면 세탁망이다. 다이소에서 세탁망을 사면서 한 번 사봤었던 것인데, 한참 전에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엄마랑 가끔 만나면 엄마랑 나는 먹는 것도 잊고 수다를 떠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들은 이야기 때문에 양면 세탁망을 볼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가 빨래를 개시면서 "어제는 아빠가 빨래 꺼내면서 뒤집어서 했다고 또 난린거야! 어쩌다 한 번 그런 건데, 꼭 그럴 때 봐가지고!"라고 하셨는데 내가 할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아빠는 참 여전하구나." 진짜 여전한 아빠다. 대충 하는 것 싫어하고, 엄마보다 잔소리가 많은 우리 아빠.


그래서 양면 세탁망 볼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는데, 사다 드리거나 알려 드리려고 생각하는데, 매번 까먹는다. 이제 곧 어버이날이라 가족 식사를 할 예정인데, 그날 내가 말씀드릴 수 있으려나.



빨리 와!

얼마 전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할아버지 한 분이 타시더니, "빨리 와!"라고 소리를 치셨다. 잠시 뒤,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에 급히 타시면서 할아버지께 소리치듯이 말한다고 뭐라고 하셨다. '그냥 좋게 말하면 되지 왜 그렇게 말하냐고.' 할아버지는 그냥 못 마땅하다는 듯 앞만 쳐다보실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타고 있어서 할머니 자존심이 더 상하시지 않았을까 싶었다. 만약 빈 엘리베이터였다면 할머니가 그 정도로 기분 나쁘시지 않았을 수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괜히 내가 죄송했다. 사실 한 마디 해 드리고 싶었다. '저희 아버지도 그러세요.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이 말을 못 해드려서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것 같다. 이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이 날 할머니, 할아버지의 짧은 대화에 내가 이토록 감정 이입을 했던 이유는 우리 엄마도 아빠한테 가지고 있는 큰 불만 중 하나라서. 꽤 한참 전 일인데, 아직도 이 순간이 생생하다. 제발 이제라도 친절한 할아버지가 되어주시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나도 남편에게 말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에서는 여자들도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어서 남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니. 사실 나도 가까운 사람에게 긴장감 없이 말하다 보면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못하고 말하게 될 때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 할아버지처럼 남편에게 소리쳐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제발 고쳐주세요. 서로 조금만 배려하는 말투로 말하면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경험해 보시면 좋으실 텐데...)


그래도 우리 부부는 꽤나 서로 존중해 주는 편이다.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한쪽이 한 템포 양보해 주는 미덕도 발휘하고. 결혼한 지 벌써 8년 차인데, 가끔 삐걱거리고, 서로에게 감정이 좋지 못한 적은 있었어도 큰 싸움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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