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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May 30. 2023

운전 못하는 엄마

아침에 교통정리하시는 모범운전자 분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전자들을 참 신뢰하시는 것 같다. 휙휙 지나가는 수많은 차를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모두가 교통정리 중이신 기사님처럼 운전을 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엉뚱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교통정리하시는 모범운전자님을 보면서 나는 정말 운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전하면 기사님이 위험해지실 것 같아서 말이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운전은 못한다. 아주 잠깐 연습을 한 적도 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서 안 하고 있다. 아니 못하고 있다.




여튼 아이에게 나는 운전 못하는 엄마이다. 대신 요리도 잘하고, 잘 놀아주는 엄마이다. 내가 나를 이렇게 정의한 것은 아니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족 소개를 할 때 나를 "엄마는 요리를 잘하고, 잘 놀아줘요."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아침에 우연히 친한 동네 엄마를 만났다.

우리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차를 세워두고 내려서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유치원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혹시 방향이 안 맞는데, 우리 때문에 돌아갈까 봐 미안해서 괜찮다고 걸어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늦게 일어나서 정신 차리게 할 겸 유치원에 걸어가는 중이기도 했고.


조금 걷다가 아이가 말했다.

아이 : 괜찮은데.

나 : 응?

아이 : 난 차 타도 괜찮은데.


내가 동네 엄마에게 "괜찮아요. 걸어갈게요."라고 말한 것과 반대 의미로 아이가 괜찮다는 말을 했다.


나 : 아~ 준이는 차 타고 가고 싶었구나.

아이 : 다음부터는 투표하자.

나 : 그래. 그러자.

아이 : 차 타고 가고 싶은 사람 손! (아이가 손든다.)

나 : 걸어가고 싶은 사람 손! (내가 손든다.)

아이 : 똑같으면 가위바위보를 하자.

나 : 그래!

아이 : 가위바위보!


내가 이겼다.


아이 : (주저주저)

나 : 그럼 삼세판이라고 할까? 세 번 해서 두 번 이기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아이 : 그래! 그러자!

나 : 가위바위보!


또 내가 이겼다.


아이 : (주저주저)

나 : 아. 요즘 엄마가 왜 이렇게 가위바위보를 잘하지?


또 걷다가 내가 "근데 OO 엄마 운전 잘한다!" 라고 하니까. 아이가 말했다.


아이 : 여자는 운전 못하는데.

나 : 여자가 운전 못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못하는 거야.


'여자는 운전을 못해. 아니야. 여자가 운전을 못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못하는 거야. 세상에는 운전 잘하는 여자도 많아.' 작년에 이 흐름으로 흘러가는 대화를 들은 뒤로 아이가 먼저 장난을 걸듯이 이 흐름의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여자라서 운전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을 잘하는 여자도 있고, 아닌 여자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장난을 건다. 사실 아이 말이 일부 맞는 것도 있다. 선천적으로 공간지각 능력이 높을 확률이 높은 남자들이 운전을 잘할 확률이 높기는 하다. 주변을 봤을 때.


나 : 엄마가 운전은 못하지만 잘하는 게 많아.

아이 : OO 엄마는 운전 잘해. 그래서 OO 엄마도 좋아. 근데 내 엄마도 좋아. 내 엄마는 요리를 잘해.

아이 : 나랑 잘 놀아주는 사람 손!

나 : 엄마!

아이 : 맞아!


아이가 나를 잘 놀아주고, 요리를 잘 하는 엄마로 생각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었다.


난 정말 평생 운전할 생각이 없는데, 아이가 내심 운전 잘하는 엄마가 부러운가 보다. 조금 더 크면 대중교통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의 자유로움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랬는데 말이다. 꼭 내가 운전을 해야 하나 싶다. 운전을 하는 사람, 운전을 하지 않지만 하고 싶은 사람은 나를 답답하게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운전을 하지 않고 지내는 나의 일상은 스마트폰을 두고 나온 날과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딱히 불편하지 않은데, 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운전을 할 수 있는 삶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는 날처럼 편리한 점은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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