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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준 Jun 06. 2021

바깥은 여름_여름은 이미 눈 앞에 다가왔어.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읽고 나서

내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 사람을 마음에 점 찍는다. 김애란. 첫 만남은 '침이 고인다'였다. 작품 속의 내가 물이 쳐들어오는 우중충한 반지하 방에서 술에 떡이 된 언니의 남자친구를 옆에 뉘고 피아노 건반을 칠 때, 또 다른 내가 사과를 우물거리며 맛나당 밖을 나설 때 나는 이 사람이다 싶었다. 나는 이 사람을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그 뒤로 작가님은 나의 최애가 되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책은 읽지 않았다. 이 책도 그랬다. 폭염경보가 발령된 제주의 함덕 만춘서점에서 산 후로 네 번의 계절이 지나도록 손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책장에 잠들어 있었다. 그 사이 내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아끼는 사람을 잃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우물거리며 다시 일어서고. 여름은 고작 한 번 되풀이되었을 뿐인데 나를 흔드는 비바람은 수십 번을 치고야 말았다.


여름의 문턱에서 우연히 책을 손에 집었다. 날은 갑자기 더워지고 이마엔 땀이 흐른다. 콧 등 아래에 봄꽃의 달큼한 향기 대신 끈적한 여름의 열기가 머문다. 캔디바 하나를 입에 물고 편의점 앞에 앉아 저 멀리 매미의 구애를 듣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이 책을 읽을 때가 왔구나! 이런 마음이 들어 책을 읽으면 실패하는 일이 없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것이 날이 더워 오른 혈압 때문인지, 책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뜨겁게 달군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의 열기처럼 책에 대한 기대는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야기는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간다. 일 년 전의 내가 '침이 고인다' 속 또 다른 나에게 이입했던 이유는 작가와 나의 시간이 동기화되는 것을 경험했기 대문이다. 10년 전 스물일곱의 김애란이 10년 뒤 스물일곱의 나에게 보내는 음성 메시지 같은 책. 미래를 걱정하고, 개떡같은 현실에 몸부림치고,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 엄마를 보며 함께 울고, 풋풋한 사랑을 하는 그때의 젊음이 내 안에 스몄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나는 고작 한 번의 여름을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나는 고작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인데 작가님의 이야기는 십년의 터널을 뚫고 나와 나를 마주했다. 책을 읽기 전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이전의 김애란은 거기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분명 좋아하는 친구인데 낯선 기분이 든다. 어제 웃으며 헤어진 친구가 십 년 뒤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내 앞에 나타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마흔 번의 계절이 지나고,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  십 년이라는 시간은 순간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걱정은 기우였다. 몇 페이지 혹은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나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처럼. 그런데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 이 이야기를 좋아해선 안될 것 같은데. 이야기 속 단어들의 무게를 이해해선 안될 것 같은데. 고작 현실의 여름은 한 번 되풀이되었을 뿐인데 내가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내 마음속 시계바늘을 수십 번이고 돌려버렸다. 지난 시간의 내가 터무니없는 고생을 한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우리의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셔츠의 소매길이가 짧아지고 이마에 땀이 흐를 때 우리는 여름이 왔음을, 또 하루의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그렇담 마음의 시간이 지났음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마음속 계절이 또 한 번, 그리고 다시 한번 지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차이가 없지만 우리 마음속 시차는 더욱 커져만 간다. 


나는 정말 몰입하며 읽었다.

그래서 더욱 슬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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