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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 (1)

조직문화 & 사내소통 이야기 [ 글: 준작가, 그림: 커피 ]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야 오늘을 기억할 수 있다."

 

어릴 적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는 미션을 깰 때 쾌감보다 다음 판에 새롭게 펼쳐질 

장소와 적들에 대한 기대였다. 


'죽으면 다시 이어 하면 되니까 괜찮아.' 

이 마인드는 두려움 없이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믿는 구석이었다. 

막상 반복적으로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어쩌다 묘수가 생겼다. 

몇 번째 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깼다는 기쁨과 만족감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인생도 게임처럼 죽어도 다시 이어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 보다 더 과감하게 도전적으로 살 수 있을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매일 가던 길을 지나 회사에 도착한다. 

늘 그 장소에서 그 사람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책상에서 똑같은 자세로 일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직장 생활의 톱니바퀴 속에서 어제 한 일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반복적으로 사는 내 모습을 뒤에서 본다면 어깨를 툭 치며 묻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니? 

 그렇게 똑같이 반복하며 사는 게 좋은 건.. 아니지?“

  



 

 "회사에 내 이름 세 글자 발자국을 남긴다면,

 회사에서 당신이 안 가 본 장소가 있습니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를 다녔는데 내가 안 가 본 곳이 있겠어?'

 

막상 생각해 보면 여러 군데, 아니 엄청 많을 것이다. 

난 회사에 안 가 본 곳도 많은데 퇴사를 하면 그냥 이대로 떠나도 될까? 


여행이 설레는 이유는 처음 가 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나라를 갈 때면 여행 기간 동안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을 

충분히 즐기고 싶어서 서점에서 가이드 북을 찾곤 한다.

 

가이드 북을 꼼꼼히 살펴보았더라도 이게 글과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천지 차이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직접 가 봐야만 느끼는 시야, 향기, 소리, 느낌, 그런 게 있다. 

그래서 여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신입사원으로 회사를 처음 출근할 때가 그랬던 것 같다. 

다음 카페 취업 사이트에서 회사 이름을 검색하고 인터넷 포털에서 회사명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다. 야근은 많지 않은지 돈은 많이 주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 

그때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꽤나 심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머나먼 옛날 다른 사람 얘기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 안 가 본 곳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레어 한 포켓몬스터를 잡듯이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았던 미지의 곳에 

나의 눈도장을 찍어 주겠다는 각오였다. 

 


 

그날 출근길에는 고층 사무실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보았다. 

다행히 계단 통로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요즘에는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었는데 그들을 위해서였는지 

지루하지 않도록 벽면 곳곳에 응원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다. 계단 걷기 운동 효과에 대한 

그림과 표 뭐 그런 것들. 다음 날 점심시간에는 좀 더 멀리 동선을 넓혀 보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비밀의 장소를 찾는 것을 좋아했었다. 

집이 주택이었는데 보일러 실은 '혼자 사는 방'이라는 네임을 붙여 

나만의 비밀 기지처럼 쓰기도 했다. 

비가 온 날에는 그 기지를 지키기 위해 흙에 빗물을 묻혀 눈 덩이처럼 생긴 공을 

다섯 개쯤 만들었고 보일러 열기를 통해 바짝 구워 비밀기지를 위한 방어 무기를 장착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교대 소속 학교라서 서로 건물들이 붙어 있었다. 

친구들과 교대 건물과 건물 사이에 가려져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아지트로 삼았다. 

거기에 뽑기로 뽑았던 장난감들을 숨겨 놓기도 했다. 계란을 부화시키기 위해 

똑닥하면 하얗게 변하는 손난로를 곁에 두고 수업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모습에 셈이 난 건지 우리가 꼴 보기 싫었던 건지 싸움 잘하는 애들이 

아지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우리에게 떼로 몰려왔다. 


그들은 우리의 해산을 명령했었다. 

네들이 뭔데 그러냐며 울부짖었던 내 친구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장소가 특별했다기보다 내 친구들과의 우정이 소중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어렸던 나처럼 이번에는 동료들과 회사 탐방을 시작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걸어볼까.”

 

내가 안 가 본 곳들은 내 동료들도 안 가 본 곳이었다. 회사 부지가 넓었기 때문에 

점심 먹고 소화도 될 겸 해서 안 가본 길들로 걸어 보았다. 


그제야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덩그러니 높게 솟아 오른 소나무, 

가지런히 심어 진 튤립, 누가 궁금해할까 흙 위에 꽂아 놓은 꽃과 나무의 이름표까지. 

인프라와 조경, 인테리어에는 한 땀 한 땀의 정성과 노력이 깃들어져 있었다.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일이었고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업일 것이다. 

회사에서 건물과 환경을 잘 유지 보수하는데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을 '공기'라는 비유를 들어 표현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공기 속의 산소는 사람이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필수 조건인데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하고 소중한 공기의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긴다. 


오늘 힘들었으니까, 스트레스 많이 받았으니까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에도 벅찬데 

공기까지 신경 쓸 수 있을까. 


그런데 동료들과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이런 곳도 있었네 하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돌아오는 길, 내게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회사에 대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는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데 오랜만에 모아진 기분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조각이 추가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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