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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 (2)

조직문화 & 사내소통 이야기 [ 글: 준작가, 그림: 커피 ]



 


"이 사람들 모두 오늘 휴가를 쓴 것은 아니겠지?"

  

수요일 오후 세 시 반 강남역 거리는 주말처럼 복잡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몸을 부딪히지 않게 신경 써가며 걷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 보다가 이 시간에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뭔가 어색했다.

 

오늘이 무슨 날이라고 다 같이 휴가를 몰아서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사는 세상은 넓고 각자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후 4시 미팅 장소가 역삼역이었기에 나 또한 그들 무리에 포함되어 평소와는 

다르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끔 이렇게 평일에 휴가를 쓰면 어떨까.

 

사무실이 온 우주인 것처럼 그 안에서 치고받고 상처를 주고받고 

소소한 행복은 찾을 염두도 안 나게 사는 거 말고 

이렇게 자유롭게 걷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한데 말이다. 


이 길이 대학 캠퍼스로 이어지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운동장에는 푸른색 유니폼과 형광색 조끼를 입은 두 개 축구팀이 공 하나를 두고 

이리저리 뛰고 있다. 


한쪽 계단 가장자리 쪽 농구 코트에는 삼 대 삼 경기가 한창이다. 

지나갈 때면 늘 시선을 사로잡는 곳. 

바스켓으로 볼이 하나 들어갈 때까지 심심하지 않게 걷게 해 준 장면이다. 


점심을 어디에 가서 먹을까 고민과 공강 시간을 뭐하면서 때우면 

잘 놀았다는 소문이 날까 싶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만 원 한 장을 모아서 실컷 술을 마시던 그때가 

한우를 구워 먹는 회식보다 훨씬 재미났었다. 


지각, 결석, 대출, 자체 휴강은 모두 나의 결정이었다. 

간섭, 통제 없이 자유로웠던 시절이었다. 


다음 날 아침 한 시간 늦게 집을 나섰다. 

회사에서 자율 출퇴근제를 적용한 이후 이전보다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정시 출퇴근이라는 과거의 빡빡한 관리를 느슨하게 풀어 주어 

한 시간 더 늦게 출근하거나 한 시간 더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라는 질문을 안 받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

 

 

 

 

"오늘은 좀 평소랑 다르게 살아 보고 싶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일의 우선순위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오늘까지 꼭 해야 할 리스트를 적고 오전에 할 일과 오후에 할 일을 구분한다. 


그리고 오전에 몇 시까지 완료해야 할지 목표 시간을 추가하고 일이 계속 진행되는 것은 

수정해서 다음 리스트로 넘기고 완료된 것은 실적 리스트로 이동시켜서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할 일 목록이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뭔가 미션을 클리어한 것처럼 기쁘다. 


그러다가 그 목록의 일들이 다 지워질 때쯤이면 내가 할 일이 없는 걸까. 왜 이 회사를 다니는 걸까? 

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지금 이 일을 내가 당장 안 하면 어떻게 되지? 과연 큰일이 날까?'


하늘이 무너지거나 지진이 나서 회사가 위기 상황에 몰리거나 하는 일. 

날 리가 없었다. 그럼 내일 해도 문제는 없었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 

이거야 말로 오늘을 좀 평소랑 다르게 살아 보는 열쇠였다. 


이 얘기를 누군가 내게 해줬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괜찮았다. 내가 스스로 해주면 된다. 

내일은 또 내일로 미루지 않을 나를 잘 아니까.

 

30년 전 고향의 또랑 길이 지금은 아스팔트로 다 메워져 있었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이 지금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내 다리가 그때 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30년 후 아스팔트는 더 반반하고 반듯하게 닦여 있을 것이고 

내 발걸음은 지금 보다 느려질 것이 분명하다. 

그때까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겠다. 


그래야 내일을 기다리는 내가 설레일 테니까.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면 정들고 익숙했던 길, 건물, 다리 등이 눈에 띄곤 한다. 

신기한 것은 새로운 장소를 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설레는 것이다. 


왜 일까. 고민해 봤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궁금증, 

계속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희망사항 때문이었다. 


고향이 주는 인상은 학교 졸업 앨범을 펼쳐 보는 것처럼 추억의 사건, 인물, 

자랑스럽고 부끄러웠던 과거의 나까지, 당장 지금의 내 앞으로 잔뜩 모아 준다. 

그리고 그 시대에 그것들을 함께 겪은 친구들이 이어 떠오르는 게 늘 레퍼토리이다. 


지난여름 휴가 때 소설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이 해외에서 살려고 나갔다가 성공과 실패를 겪는 내용이었는데 

그 주위에는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떠올린 사람은 사원과 대리 시절 프로젝트를 함께 했었던 부장님이었다. 

가끔 나를 놀린다고 농담을 던져도 선한 마음이 느껴져 웃게 만들었던 분. 

그는 일을 할 때 성격은 급했지만 후배들을 부리지 않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타입이었다. 


나를 아끼고 잘 되기를 바라 주는 선배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내 입장을 배려하거나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은 물론 손에 꼽힌다. 

그때의 고마웠던 기억이 결국 지금 아니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다짐으로 이어져 

휴대폰에 그분께 연락하기라는 메모를 적었다. 


휴가에서 복귀하는 날 아침 바로 연락을 했다. 

4년 만이었는데도 엊그제 본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연락했는데도 반갑게 맞아 주는 그 선배 덕분이었다. 


여전히 담백한 모습이었다. 

4년 뒤 선배와 난 여전히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곧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회사를 다녀야만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문득 나는 후배들이 오랜만이라도 찾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내 이름 세 글자. 


이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그 세 글자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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