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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학원 그만두듯 회사도 쉽게 (1)

조직문화 & 사내소통 이야기 [ 글: 준작가, 그림: 커피 ]




"상상 퇴사. 끝까지 가야 보이는 것들."

 

아침부터 일찍 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 날 퇴근이 마지막 퇴근이라면 어땠을까. 홀가분했을까. 시원섭섭할까. 

그 기분은 결국 그 상황이 닥쳐 봐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상상 퇴사를 해 본 적이 있었다. 

단순히 '나 이제 회사 그만두고 싶다.'라고 투정 부린 게 아니다. 

차근차근 면밀하게 나 홀로 준비를 해 보았다. 가족에게는 언제 밝힐지, 

팀장한테 언제쯤 알릴지, 퇴사일을 어느 날로 정해야 좋을지 타이밍을 고민했다. 

퇴사를 하면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남은 연차를 수당으로 

얼마나 받을지도 준비 과정에서 중요했다. 당장 고정 수입이 없을 때 오는 생활 

타격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지인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 

대부분 동료들은 내가 나간다고 하면 아쉬워할 것 같았다. 반대로 나가거나 말거나 

하는 무관심한 태도도 보일 것이다. 그래도 나가서 너무 좋다고 만세를 부를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물론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사를 졸업에 비유했다. 

졸업은 보다 성숙한 다음 단계로의 변화를 암시한다. '초 → 중 → 고 → 대' 학교의 

명칭만 보더라도 점점 높아지고 커질 것만 같다. 단추를 한 개 잠그고 다음 단추를 

잠글 채비를 하는 것처럼 현재의 끝과 더 큰 미래의 시작을 의미하는 걸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 순간.“

 

회사를 십여년 만에 졸업하는 거였으니 살면서 가장 오래 다닌 학교를 졸업하는 

기분이었다. 인사팀에서 일하며 수 백명의 퇴사를 서포트했지만 나 스스로가 퇴사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특히 사원 시절에는 그게 더 멀게만 느껴졌었다. 

인사 일 덕분에 퇴사자들과 면담을 하며 수많은 케이스와 다양한 입장을 직접 보고 

듣다 보니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서랍에서 꺼내 준 퇴직원계는 그들이 

회사와 인연을 끊을 수 있도록 건네주는 커터 칼 같았다. 


그들이 거기에 서명을 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그들도 나도 마음이 시원하지만은 

않았다. 뭔가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한 찝찝한 그런 기분이었다. 어느 분은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겪은 미운 정 고운 정 때문인지 얼굴을 붉히고 눈물이 살짝 보이기도 했다. 

아마 그 모진 세월을 퇴사라는 이름 안에 다 새길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상상 퇴사 또한 비슷했다. 

퇴사를 굳게 결심하면 오히려 회사에 대한 미움과 아쉬움보다 고마움과 정이라는 

새싹이 돋는 걸 느꼈다. 괜히 로열티가 높아지는 게 이건 반전이 분명했다. 

막상 떠나려니 미련이 남는 걸까. 날 꼭 잡아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씨 유, 어게인."


퇴사를 마음먹으면 흔히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있다. 연예인과 임원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위계 주의 회사 속에서 임원처럼 높은 자리는 

뭘 하든지 유리하기 마련이다. 권한과 책임이 많고 그에 따른 보상도 두둑하다. 

아래 다른 자리를 뺐거나 없앨 망정 위의 자리는 쉽게 내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센 임원이 나가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역량이 부족한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도 회사는 매년 늘 그랬듯이 비슷하게 굴러간다. 심지어 

뛰어난 역량 보유자가 앉더라도 수레바퀴의 굴레는 크게 튀지 않는다. 


전과 똑같이 돌고 있다. 그 말은 내가 나간다고 해서 회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아니 바뀌었는데?'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뀔 타이밍에 나가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회사는 

혼자 굴리는 바퀴가 아니다. 내가 잠시 쉰다고 구르는 바퀴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기다려 줄 수가 없다.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니까. 그래서 주위에 

회사 걱정을 하며 퇴사 시점을 고민하는 이에게 나는 그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라고 권한다. 적당히 정리하고 이미 거의 지워져 버린 Start 자국을 다시 

새길 준비를 하라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나의 퇴사를 마지막 악수로 볼 테지. 

그러나 내게 그것은 넥스트를 의미하는 Again이었다.






"껍데기를 벗고 숨은 날개를 펴고.”


가끔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거나 불공정한 무언가에 반발하고 

싶을 때 서랍에서 미리 써 놓은 사직서를 꺼내고 싶다. 직원 전체를 발신자로 넣고 

임시 저장해 놓은 이메일 발송 버튼을 누르는 상상을 한다. 마치 시한폭탄이 터지듯이 

메일 알림이 동시 다발적으로 울릴 것이다. 웅성웅성 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쿨하게 

회사 정문을 걸어 나오는 모습이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 같다. 

옥상에서 혈투를 버리고 내려온 그는 피를 흘리며 쌍절곤을 복도에 내던진다.

 

"대한민국 학교 X 같다. 에이틴!" 


이 대사를 대한민국 회사 X 같다로 한 단어만 바꾸면 어떨까. 

한 발 더 나아가 쿨하게 사내 방송을 해 버리는 것이다. 상상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단순히 함께 일하는 관리자의 태도나 관계가 좋지 않은 게 나의 퇴사 사유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회사에서 쌓은 이미지는 리셋되지 않고 누적되어만 갔다. 그래서 평판을 강조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사내 정치를 하는 그들은 최소한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동창회를 가거나 회사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회사를 다니는 건지, 내가 화사인 건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회사가 잘 나가는 걸 내가 잘 나가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회사는 껍데기일 뿐이야. 그걸 벗었을 때 너를 찾아야만 해."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회사를 떠나면 나라는 사람이 무채색이 될 것 같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마치 고등학교 교복처럼 

매일 입고 있지만 내 눈에 띄지 않는 마의. 


그러나 나만 빼고 사람들은 나의 껍데기를 보고 있다. 

내 입에서 회사 이름이 나왔을 때, 내 손에서 명함을 건네받았을 때, 그들의 눈빛, 표정, 말투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아! 이렇게 생겨 먹었구나. 내가 입은 껍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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