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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가속도가 붙는 그 순간이 청춘 (1)

조직문화 & 사내소통 이야기 [ 글: 준작가, 그림: 커피 ]



"엑셀레이터를 막 밟은, 가속도 붙는 그 순간이 청춘이다."


  ※ 청춘 (다음 사전)

       1) 한창 젊고 건강한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봄철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2)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서 만물이 푸르게 된 봄철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꺼내 햇살이 잘 드는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은 가을 햇볕이 유난히 따뜻하다. 평일 낮 독서실 

좁은 휴게실에는 나뿐이었으나 보온 도시락은 엄마의 정성이 담겨 있어서 인지 

아직 따뜻했다. 


중학교 때 매일 같이 가방에 단골손님으로 들고 다녔었는데 

스무 살에 다시 드는 게 반갑기도 했다. 반찬은 생채 무침과 부추 전이었다. 

엄마가 부추 전을 한 입 크기로 썰어 가지런히 담아 주셨다. 밥을 한 숟가락 뜨는 데 

밥알 위로 햇살이 비춰 눈이 부셨다. 재수가 죄수인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술을 마시느라 축구 동아리에서 볼을 차느라 바빴었다. 

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있었다. 고등학교 내내 기숙사 생활로 

삼 년을 함께 살았던 친구들이었기에 가끔 모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공부한다는 핑계로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연락이 뜸해지기도 했다. 


아이보리 색 국사 교과서를 읽다가 잠깐 쉬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게 

해가 지며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석양이 섞인 하늘색은 붉게 물든 낙엽들과 무척이나 

잘 어우러졌다. 내가 다녔던 독서실은 언덕 위 성당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었고 저 멀리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머리 부분이 보였다. 그때 꿈을 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소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간절했다. 바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당당하게 

걸어 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사 개월 뒤 나는 대학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고 또 이십 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 꿈을 향해 드라이브 중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팩을 끼어서 플레이하는 게임을 좋아했다. 엔딩을 보기 위해 사촌 동생과 

여러 날을 밤새기도 했다. 마치 영화가 한 편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 후 쿠키 영상이 

나오는 것처럼 게임도 비슷했다. 어려운 관문을 반복적으로 도전하면서 해 내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 오락실과 PC 게임에 친해졌고 고등학교 때 인터넷 야후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세계를 느꼈다. 


당시 난 문과였지만 전공을 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바로 인터넷이었다. 세이클럽, 

다모임처럼 채팅과 쪽지가 금세 유행이 되었고 다음 이메일은 팬레터를 주고받는 것처럼 

나름 로맨틱했다. 다행스럽게 정보통신 전공인데도 문과 학생의 지원을 받아주는 학교가 있었다. 

난 마음속으로 그 학교에서 그 전공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수능이라는 종점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도 그 길에서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선생님, 

부모님, 친구들 모두 한 방향, 한 뜻으로 걸어가기를 원했다. 그들은 문과생이었던 나의 선택이 

불안정해 보였기 때문에 뜻 밖이라는 반응이었다.


본래 나의 전공은 세 개 전공을 합쳐 놓은 실험적인 학문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방면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나와는 잘 맞았다. 컴퓨터 지식을 갖춘 

엔지니어들과 말이 통하고 그들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컴퓨터공학 + 경영학 + 정보시스템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복합전공이었다. 각 전공 교수들로부터 색이 다른 커리큘럼 과목을 

배울 수 있었다. 


돌아보면 IT 기업의 인사담당자로서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서포트하는 일과 

제법 잘 어울리는 전공이었다. 그러나 회사 입사 동기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S/W 엔지니어 신입사원이 희망 부서 1순위에 '인사팀'을 적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 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내가 꾸는 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 '왜?'라는 이유를 묻게 되고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이 나의 적성에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되거나 누구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니?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비전(등대)이 있니?' 


이런 질문들이 내 인생의 답을 찾게 해 주었다. 정확하게는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난 스스로 꿈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살아오면서 갖게 된 가치관, 멘토, 영웅, 

직업처럼 내가 꿈꾸는 인생의 지향점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그냥 주위 사람들이 가니까 

나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아서는 내가 사는 이유가 되지 않았다. 남을 쫓아 가면 시간이 

한참 지나고 어느 지점에 도달했을 때 '이 길이 아니었구나' 하고 후회할 것 같았다. 


난 나의 꿈을 존중했다. 확신이 없는데 선택해야 할 때 누구나 마음은 갈팡질팡하고 

후회할 까 두려울 것이다. 그때 나의 꿈을 존중하면 내 손으로 직접 결정하는 데 힘이 되었다. 

앞으로 계속 닥칠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남 눈치 보고 주저하고 싶지 않다면 선택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꿈을 그리다 보면 결국 그것을 닮아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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