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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작가 Oct 26. 2024

1화 점술가

타로 (Tarot)

  2006년 10월 대학 캠퍼스에서 가을 축제 판이 벌어졌다. 2만 7천 명이 하나가 되어 어깨동무하고 응원가를 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기이하고 신비로운 사건들이 일어났던 한영대 캠퍼스는 서울 가장 중심의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한국총학생연합회, 전국대학생협회의 중심지로 통하는 한영대는 학생 투쟁으로 가장 유명했다. 투쟁 중심 학생회가 총학생회장을 연임하는  당연했었는데, 2002년 월드컵 이후 복지 중심 학생회에게 처음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차기 총학생회를 차지하려는 투쟁 중심 공대 학생회 구성원들은 목이 타들어 갔다. 인문대 학생회 역시 밀어주는 뒷 세력에 힘입어 전체 대표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고 삼파전 중 가장 유리한 현 총학생회장 경영대 나연은 두 달 뒤 선거를 위해 오로지 가을 축제 성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 광장에는 학생들이 차린 주점들이 열려 있다. 곳곳에는 '등록금을 동결하라', '교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 '학생들의 공간을 침범하지 마라' 등 한 땀 한 땀 수기로 쓴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근처 물 풍선 던져 맞추기, 요구르트 50개 마시기, 농구공 던져 넣기 등 다양한 게임들은 투쟁과는 정반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음이 무성한 때 웅성거리는 구경꾼 무리 둘러싸여 있는 인기 코너 '타로 점'이 있었다.


 누가 봐도 아이돌 가수로 믿을 만한 아리따운 아가씨 차례였다. 그녀는 타로 카드를 섞고 있는 준아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새내기로 보이는 희고 고운 민 낯에 흰색 민 소매 블라우스와 무릎 위까지 오는 청치마 차림이었다. 그녀는 한영대 얼짱 윤아린이었다.


  “이상.. 형을.."

 그녀는 결국 입을 열다가 다물었다.


  “네, 보고 싶은 주제를 천천히 고민해 보고 얘기하시면 됩니다..”

  준아는 예쁜 여자가 앞에 있는 것이 쑥스러운 듯 아린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고 겨우 여유 있는 척 말했다. 조금 빠른 속도의 목소리에 긴장이 여력 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그녀의 답변을 기다렸다.


  아린의 옆에는 단짝 친구 도희가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170cm의 큰 키에 굽이 없는 진갈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아린과 떨어져 있다면 더 빛날 것 같이 충분히 귀여운 외모였다. 도희는 당황하는 아린의 팔짱을 꼭 쥐고 안심을 시키려 했으나 아린은 결국 대답을 못하고 입술을 깨문다. 도희는 아린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대신 대답했다.

  “아까 이상형 물어보기로 했잖아. 얘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잘 몰라서요. 어떤 남자가 자기랑 잘 어울릴지 궁금하데요.”


  아린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땅을 쳐다보았다. 준아는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밝게 받아쳤다.

  “아! 이상형! 잘 찾으셨네요. 이 카드가 연애 운 전문 카드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상형이 어디 있을지..”

 막상 질문을 받자 준아의 태도가 돌변했다. 진지하고 경건하게 타로 카드를 샥-샥- 소리 나 열여덟 번 섞었다. 카드 섞는 것을 보면 한 두 번 흉내 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준아는 카드 섞는 것을 멈추자마자 물었다.     

  “혹시 오른손 잡이세요?"


 "네."

  정연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 보았다. 점 결과가 걱정되는지 약간 불안해 보였다. 준아는 주사 바늘 앞 긴장하는 아이를 대하는 간호사처럼 '자, 여기 보세요.' 눈짓을 이어갔다.

 "그럼 왼손으로 카드를 세 장 뽑아 보세요. 이제 제 말 듣고 상상을 해볼 거예요. 깊은 잠 속에서 천천히 깨어날 때를 떠올려 봐요. 당신은 자려고 했던 시간보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꿀잠을 잤어요. 컨디션이 좋아졌고요. 행복한 느낌으로 눈을 뜨게 돼요." 


  정연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눈을 감고 준아의 얘기를 상상해 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구수~한 커피 향이 코로 느껴져요. 고개를 돌려보니 당신이 좋아하는 핸드 드립 모닝커피가 내려지고 있네요. 편안한 느낌의 남자가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요. '잘 잤어요~'"


  “흐핫..”

  아린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 웃었다. 후다닥 오른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준아는 모르는 척 지시했다.


  "자, 이제 상상 속의 남자를 떠올리면서,. 카드를 세 번 뽑으시면 됩니다.”


  도희는 아린의 옆모습을 흘기며 기다리기 지루한 듯이 보였다. 아린의 팔꿈치를 두 번 치며 얼른 카드를 뽑기 재촉했다.

  아린은 바로 손을 카드에 대었다가 다시 신중하게 카드를 한 장씩 세 번에 걸쳐 뽑았다.

  준아는 정연이 카드를 선택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정연이 고른 첫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카드 속에는 어느 여인이 망토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어두운 지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여인의 표정은 알 수 없고 걸음의 속도는 한 참 느려 보였다. 손에 든 촛불이 앞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흠.. 당신은 현재 솔로네요. 이 카드는 외로움을 상징해요. 적막하고 낡은 성을 지키기에 너무나 오래 시간이 흘러 버렸어요. 당신은 탈출하고 싶어 해요. 이곳으로부터 구해 줄 남자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첫 번째 점괘 풀이가 나오자 구경하는 남녀 학생들이 웅성 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바로 준아의 풀이를 듣고 난 정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별 반응 없이 담담하게 첫 번째 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준아가 두 번째 카드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이 그림을 봐봐요. 여기 이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어떤가요? 웃으면서 만족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죠?"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불행한 사람은 단 한 사람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즉, 당신의 이상형은 주위를 둘러봐도 전혀 없을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주는 관심은 이용하려는 의도지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보이네요. 오히려 당신이 찾는 사람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고 당신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과 서로 새롭게 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거죠.”


  아린은 그의 막힘없는 풀이에 살짝 빠져드는 듯 보였다. 이미 어깨가 준아 쪽으로 한결 기울어져 있었다. 다음 카드가 더 궁금해지는 가운데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손을 모아 보았다.


  세 번째 카드를 뒤 짚은 준아는 잠시 머뭇거리며 카드를 삼초 간 응시하였다.   

 카드를 보니 뿔이 달린 험상궂게 생긴 붉은색 피부의 악마가 횃불을 들고 있었다. 흐릿한 눈빛으로 양다리가 묶여 있는 소녀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 이거.. 그동안 스토킹을 당했다고 나오네요.


  밤에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 오거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낀 적.. 혹시 있었나요?”

  그 순간 여자 눈의 동공이 커졌다. 어깨의 떨림과 함께 민 소매에 붙은 하얀 레이스가 가냘프게 흔들렸다.


  “자, 괜찮아요. 보통 예쁜 여자라면 누구나 가벼운 스토킹은 겪을 수 있으니까.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시고요.. 마지막으로 한 장을 더 뽑아 보죠. 만약 스토킹을 경험했다면 정확한 점괘를 위해 어렵겠지만 그때 상황을 떠올려 보며 뽑아 보세요.


이제 마지막 카드입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한 카드를 뽑으려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참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반대쪽 카드를 선택했다.   


  남자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천천히 마지막 카드를 열었다.  

  카드 속에는 낭떠러지가 보였다. 누군가 떨어지기 직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다리 한쪽은 이미 허공을 향해 뻗고 있어 곧 추락할 것 같았다. 오른쪽 아래 구석을 자세히 보니 바로 눈에 띄지 않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자의 한쪽 다리를 아래 있는 사람이 가까스로 잡아 준 모양이다.

준아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시선을 여자 쪽으로 획 돌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침묵했다. 


  정연은 준아의 태도에 겁에 질려 말끝을 흐렸다. 

  “이게.. 무슨 카드..”


  “...


   그 스토커가..  


  지금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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