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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작가 Oct 26. 2024

2화 수수께끼

타로 (Tarot)

  순간 적막이 흐르고 아린, 도희의 놀란 표정과 함께 구경꾼들 중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준아는 곧바로 아린의 주위에 수상한 남자를 찾았다.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후드 티 남성도 시야에 걸렸다. 그러나 이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다. 준아 역시 갑작스럽게 안 좋게 나온 점 결과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C.. 괜히 솔직하게 얘기했나..”


  스토커를 못 찾으면 앞에 있는 여자가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구경꾼들의 총인원은 백 명 남짓이었고 준아가 해설하는 목소리를 들을 정도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추려보니 이 삼십 명 수준이었다.   

  그중에 커플들을 빼고 여자끼리 구경하는 무리들을 제외하면 용의자가 일곱 정도로 확 좁혀졌다.   

  첫 번째 후보는 남자 셋 무리였다. 가장 형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저씨 같은 잠바와 면바지 차림에 짧은 스포츠머리와 무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 사람도 누군지 궁금해하는 눈치네. 저 아저씨 옆 두 친구는 배낭 멘 모범생들이니까 패스!'  


  두 번째 후보 체대생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있었다. 왼쪽은 단순 무식해 보이는 성미로 스토커와는 영 거리가 멀었다. 오른쪽에 서 있던 남자는 그녀의 순서가 오기 전부터 예쁘다고 한결같이 쳐다보는 게 오늘 처음 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 봤자 일부 감과 논리에 따른 추리였다. 준아는 '그래도 끝까지 찾아보자' 싶었다. 


  다른 후보는 혼자 구경하고 있는 검은 모자, 구레나룻가 없는 게 제대 후 바로 복학을 한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군 복무 중에 스토킹을 어떻게 하지? 할 수 없으니 패스!


  마지막 후보는 고개를 숙인 후드 티, 준아는 그 남자가 고개를 들 때까지 한참을 주시하였다. 그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5분처럼 느껴지는 30초가 지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준아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준아는 잠시 그 남자의 눈빛을 관찰했다. 그가 준아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자 준아는 다시 마지막 타로 카드를 한 참 쳐다보았다. 10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을까 구경꾼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준아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고개를 든 준아의 눈빛이 번쩍였다.  

  '찾았다! 그래서 바로 찾기가 어려웠던 거였어.'  

 
  구경꾼들은 웅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곧 준아의 시선이 가리키는 한 곳으로 눈이 모아졌다.

  준아는 아린의 왼 팔을 감싸고 있는 도희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희는 주위에 시선을 의식한 듯이 얼굴이 빨개져 소리쳤다.

  “뭐래? 왜.. 왜 날 처다 보고 그래요? 웃기는 사람이네. 진짜.”  


  준아는 별 대꾸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도희의 눈을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도희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어투로 말했다.

  “야, 기분.. 기분 나빠. 빨리 가자.”


  도희의 재촉에도 아린은 무언가를 꾹 참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가자니까!”

  아린은 도희가 억지로 당기는 손을 탁- 풀어내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가고 싶으면 너 먼저 가. 난 좀 더 이따 갈래.”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던 구경꾼들은 이제 자기들끼리 소곤 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도희는 주위의 뜨거운 시선을 못 이긴 채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갔다.  


  아린은 고등학생 때부터 단짝이던 친구가 가고 싶던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과 같은 대학을 지원했을 때부터 이상함을 감지했었다. 준아의 입으로 나온 게 팩트라고 받아들였지만 그것 자체를 아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모르는 척했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저기,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해도 될까요?”    

  갑작스럽게 휴대폰을 내미는 아린의 요청에 준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래도 될까? 지금 번호를 알려줘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복잡해졌으나 곧 흔쾌히 번호를 찍어 주었다. 혹시나 다른 번호를 찍을까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해서 열 한자리 번호를 하나씩 신중하게 눌렀다.


 이때 준아의 친구이자 타로 점 코너의 바람잡이 역할인 태오가 끼어들었다.

  “자, 이제 마지막 손님까지 다 끝났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마감합니다. 아쉽겠지만 저희도 이제 술 한잔 하러 가야 해서요. 다음에 또 만나요!”

  

  구경하던 사람들은 뭔가 여운이 남았는지 수군거리며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준아는 뒤 돌아 모여 있었던 사람들 곁을 빠져나갔다. 배시시 웃으며 걸어가는 준아 곁에 태오가 어느새 따라붙었다.  


  “준아야, 좋냐? 번호 따여서? 

  준아는 기분 좋은 듯 빙긋 웃기만 했다.


  "근데 그건 어떻게 안 거야? 걔 친구가 스토커라는 걸.”  


  “그 마지막 카드에 다리를 잡고 있던 사람 기억나? 그게 떨어지려는 사람을 구해주는 게 아니라 남은 한 다리마저 밀어 버리려고 잡은 것처럼 해석할 수 있거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카드를 보니까 그때 눈에 확 들어 오더라고." 

 특유의 낙천적이고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옆에 있는 친구의 눈을 봤지. 결국 이상형이 궁금했던 건 점 보는 여자 본인이 아니었던 거야. 그 스토커가 궁금했던 거지.”


  준아의 풀이에 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엷게 웃었다. 준아와 가장 친하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다. 동기 준아가 남들보다 눈빛으로 마음을 읽는 감각이 타고 난 타로 점술가라는 것을.

  준아와 태오는 소속 단과대 주점에 들어섰다. 준아는 제대 후 복학한 지 3개월 만에 IT대학 동아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보통은 끼리끼리 한 무리에서 놀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모든 성향의 집단과 잘 어울렸다. 밴드 동아리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고 농구 동아리에서는 포인트 가드, 봉사 동아리는 홍보를 맡고 있었다.  


  또한 학과 대표로서 개강 파티, 조인 엠티 등 진행하며 좋은 반응을 얻은 게 소문이 퍼졌다. IT대학 학생회로부터 내년 선거본부에 기획국장으로 스카우트 1순위 후보로 올라 있었다.

  키 큰 체격에 턱수염이 돋보이는 뿔테 안경을 낀 IT대학 회장 한재훈이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 어서 와! 부스 운영하느라 고생했겠다. 용하다는 소문이 아주 쫘 악 퍼졌던데!!”  


  재훈 옆에는 총학생회 홍보국장 백지연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둘의 방문이 관심 없는 듯 안경을 추켜올리며 빈 술잔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연은 재훈과 같은 과 동기로 학생회를 같이 시작해서 사귀게 된 사이였다.  

  “아주 별일이야 많았죠. 오늘 준아가 한 턱 쏴야 해요. 예쁜 여자한테 연락처도 따이고 아주 땡잡았죠~”

  태오는 여자 앞에서만 쑥 맥이 되는 준아를 놀리는 게 재미있었다. 준아는 그래도 좋은지 실실 웃으며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앞에 메뉴판을 슬쩍 흘겨보더니 말했다.


  “소주 한 병 천 원이니까 다섯 병 시키고, 황도 삼천 원, 오뎅탕 이천 원.. 옛 따 기분이다~! 거금 만 원 쏜다!!”


  “올- 입학하고 처음이다. 컵라면 한 번을 안 사더니 만- 원-!! 만원-을!! 그렇게 좋았던 거냐?”

  태오는 너스레를 떨며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훈 테이블에 앉은 무리들이 두 사람을 환호해 주는 사이 주점 입구부터 누군가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다. 밝은 갈색의 긴 생머리에 희고 고운 살결, 전반적으로 청순함을 풍기는 외모의 여성이었다.  


  주점 안에 남녀 구분 없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 같이 움직였다. 재훈 또한 그녀가 어느 테이블에 앉는지를 넋 나간 듯이 지켜보았다. 지연은 그녀가 못마땅한 듯이 '이 쪽으로는 오지 마'라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결국 재훈 테이블 앞까지 다가왔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손님을 맞는 듯이 모두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준아 쪽 방향을 쳐다보았다. 태오가 반사적으로 준아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아까, 그 여자!”  


  준아는 그녀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찰나 그 여자와 눈을 마주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재훈, 지연, 태오는 둘 중에 누구라도 말을 꺼내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의 입술이 동시에 움직였다.

  “저기..”

  “저기..”


  딱 '찌찌뽕'인 상황이다. 서로 말이 부딪히자 누구 할 것 없이 말 문이 닫혀 버렸다. 진지하게 타로 점을 보던 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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