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사가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십 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믈었다.
" 이 이십 달러짜리 지폐를 갖고 싶은 분 있습니다?"
여러 명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강사가 말했다.
"드리기 전에 할 일이 좀 있습니다."
그는 지폐를 구겨 뭉치고는 말했다.
"아직도 이 돈 가지실 분?"
사람들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렇게 해도요?"
그는 구겨진 돈을 벽에 던지고, 바닥에 떨어뜨리고, 욕하고, 발로 짓밟았다. 이제 지폐는 더럽고 너덜너덜했다. 그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사람들은 다시 손을 들었다.
"이 장면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말했다.
"내가 이 돈에 무슨 짓을 했든 그건 상관 없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이십 달러짜리 지폐니까요. 우리도 살면서 이처럼 자주 구겨지고. 짓밣히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모욕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처참했다.
구겨지고 짓밟혔다.
그 순간 난 아무런 능력 없는 사람이었다.
너덜너덜.
버려진 종이보다 못했다.
분노하면 어쩌고 억울하면 어쩌랴.
내겐 그를 대항할 힘이 없는 걸.
그런 그가 부럽기까지 한 날도 있었다.
감히 눈길조차 줄 수 없는 하늘 자리로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밀려오는 자기 혐오.
그가 그 자리에 올라 서는 동안, 난 무얼 했던가.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버릴 때, 난 어땠는가.
왜 아무말도 못했는가.
왜 그런 말로 어설픈 저항을 하려 했는가.
실력 없는 나를 비난했다.
고개를 떨군 내가 처량했다.
그런 날, 술에 기대면 안 됐다.
한 잔을 기울이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마시는 날이 되어버렸으니까.
그 속을 채우는 건 경멸과 무시의 속삭임
위로해주는 분위기였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다.
그를 대적하지 못한 질투였고,
앞으로 나서지 못한 어리석은 허영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당했다, 사악하다."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끼리의 자조로 버틸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랬다.
앞에서는 찌그러지고,
술 앞에선 센 척을 했다가 그래도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믿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허탈해도 그런 날을 보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다른 세상을 몰랐다.
보려하지도 않았다.
그 세상 뿐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권.
그렇게 시작한 미라클 모닝, 글쓰기, 읽기, 달리기.
하나의 변화는 연쇄 반응으로 일으켜 본 적도 없는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스스로 나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 어땠을까?
지금 그 앞에서면 난 어떻게 행동할까?
가끔은 그런 쓸데없는 상상 앞에 서곤 한다.
이내 거둔다.
의미없다.
난 알아버렸다.
난 같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그때 몰라서 본능적으로 했지만, 지금을 알아서 꺽이지 않으려 그리할테지.
그것이 나다.
알았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나 그대로 모습으로 돌진할테다.
그런 내가, 나를 생각하는 나의 가치다.
내가 세상에서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내 삶에선 내가 답이다.
그걸 의심하지 않는 것.
난 그리하면 된다.
던져지고 바닥에 떨어졌던 사람도 나였고,
일어서려 고군분투했던 사람도 나였다.
그 모든 순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
그대로 내가 만들어가는 나다.
애시당초 그렇게 태어난 나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나를 밀어버린 그에게도 감사하다.
아직은 헉헉거리며 걷고 있다.
늘 여유있게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다.
허나, 내 길이다.
스스로 불씨를 냈고, 그 불을 적당히 따뜻하게 피워간다.
혹시 지금, 그때의 나처럼 무력했던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우리 모두 그런 순간이 있었지요.
무너졌던 나, 다시 일어선 나.
어쩌면 지금이, 진짜 나를 다시 꺼내야 할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어요.
지금,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