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염색하러 미용실에 갔다.
늘 가는 곳인데,
무슨 말이 그렇게 길었을까.
돌아오는 길에도 그 말을 생각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이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이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참 정교하다.
날카롭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런 문장들이 있었다.
더 오래 붙들고 읽었다.
미용실 원장님이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이상하게 책 속 내용과 닮아 있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책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었다.
이분이 그 책을 읽었을 리도 없는데,
말의 결이 비슷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책 쓰셔야겠는데요?"
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사람 심리는 다 똑같잖아요.
결국 다 거기서 거기예요."
원장님의 말씀이다.
맞는 말이었다.
마음을 탁 치고 지나갔다.
웃으며 하신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도 웃지 못했다.
어쩐지 그분 입에서는 가볍지 않았다.
다 겪은 얼굴로 내려놓듯 말했다.
나는 아직도 사람을 잘 모르겠는데,
왜일까.
나이가 더 많음에도,
그만큼 겪어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날은 내가 읽은 책도,
살아온 해수도 조금 작게 느껴졌다.
그분은 20대 때부터 미용 일을 시작했다.
적어도 20년은 넘게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과 마주한 삶.
삶의 민낯을 듣고,
감정을 읽고, 표정을 바라봤을 것이다.
누구는 상처를 얘기하고,
누구는 거짓을 말하고,
또 어떤 날은 진실한 대화도 있었겠지.
얼마나 많은 인간 군상을 접했을까.
책에서 어렵게 풀어낸 개념들이
그분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내가 책에서 한 줄을 끄집어내면,
"아 그거, 몇 년 전에 뉴스에 나왔던
그 사건, 그 심리 얘기 아닌가요?"
하고 바로 이어받는다.
나는 문장으로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있었고,
그분은 사람을 통해
문장을 이미 살아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쉽게 얻어졌을 리 없다.
상처 받았을 거다.
억울한 말에 밤잠 설친 날도 있었을 테고,
좋은 사람을 보내고 허탈한 날도 있었겠지.
그 모든 시간 끝에
오늘의 저 말이 나왔을 거다.
경험은,
정말 깊은 언어구나.
사람을 오래 겪은 사람에게는
말에 묻어나는 감각이 있다.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삶을 통과한 말일테지.
언젠가 책 한 권과 마주해도
낯설지 않게 읽어낼 수 있구나.
내가 읽은 책이 얇게 느껴졌다.
활자는 그대로인데,
머릿속에 오래 맴도는 건
그분의 말이었다.
생각보다 우리 곁엔
시간이 만들어낸 말의 무게가
숨어 있기도 하다.
종이보다 사람이 먼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