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사람이다.
까다롭습니다.
어지간하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요.
아닌건 아니라고 분명히 표현하는 편이죠.
제주에서 자란 저에게
싱싱한 재료는 기본입니다.
양념으로 재료를 숨기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아요.
끓이고, 소금만 들어가도 되는 맛.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비린 건 기가막히게 잘 느껴요.
그럴 땐 한 입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단맛 없는 과일엔 손도 대지 않아요.
맛있게 먹어야 하잖아요.
음식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해왔어요.
입 바른 말을 못해요.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해요.
직설적으로.
그게 사실이니까요.
(완전 대문자 T)
냄새는 어찌나 잘 맡는지.
남편이 언제 담배를 폈는지,
커피를 마셨는지, 라면을 먹었는지
다 알아요.
귀는 또 초능력인가봐요.
밤 중에 아이들이 화장실에 다녀와도
남편이 새벽에 귀가해도
방문 여는 소리,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를
놓친 적이 없어요.
그 소리에 자다 깨면
그날은 새벽까지 이도저도 아닌 상태.
자려 했지만 잠들지 못하고,
움직이려 했지만 기운은 없고,
귀는 날카로운데
몸은 말을 듣지 않았어요.
태풍 부는 날은 잠을 다 잤네요.
바람 소리에 꼴딱이죠.
여행지에서 못자는 건 당연했고요.
예민한 몸이었어요.
조금만 과하게 먹어도 바로 소화불량.
급하게 먹으면 배에 가스차고 더부룩했죠.
아침마다 토할 것 같은 속쓰림은 일상.
20대부터 위 내시경을 받았어요.
위염, 위궤양 등의 만성 위장병.
역류성 식도염,
십이지장염.
여러 가지가 얹히더군요.
배고픈 건 정말 참을 수 없어요.
손이 떨리고 금방 쓰러질 것 같아요.
시간 맞춰 배 속으로 뭔가 들어가야 해요.
선천적으로 저질 체력.
아픈게 당연한 아이.
초등학생 시절 개근상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어요.
그런 저를 걱정한 부모님은
외출도 자제 시키셨죠.
감기 기운은 스치기만 해도 바로 알아요.
계절 마다 두 번씩은 기본.
1년에 여덟 번 이상 몸살을 앓았습니다.
두통도 잦았습니다.
왼쪽 관자놀이에서 시작해
눈을 터질 듯 조이던 통증.
몸 전체를 잠식합니다.
MRI에선 큰 이상은 없다고 하더군요.
엉덩이엔 살이 없어요.
딱딱한 의자에 오래 못 앉아요.
적당한 자리를 찾으면 거기만 앉아야 해요.
방석은 늘 필수였어요.
지금은
목·허리 디스크,
척추관 협착증,
퇴행성 관절염까지
이름표가 늘었습니다.
이 몸으로,
이 감각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십 대 시절,
같이 일했던 선배의 말이 떠오릅니다.
"넌 고슴도치 같아.
온 몸에 가시를 세우고 날 건들지말라고
하는 것 같아.
예민하고 모든 걸 다 신경쓰고
연연해 하면 힘들지 않냐? 괜찮냐?
집에 가면 매일 밤 우는 거 아니냐?
그런데,
밥은 또 뭐든 잘 먹어.
사람에 대한 편견도 없어.
누구하고든 잘 어울리고
의심 없이 아무나 믿는 걸 보면 참.
기억력은 좋아서
무슨 일 있으면 잘 챙긴단 말이야.
지나번 내가 실수 할 뻔 한 것도
네가 기억하고 체크해서 넘어갔잖아.
고객에겐 최고로 친절하고
잘 웃고 잘 어울리는데.
주변에서 아니다 싶으면
그냥 꽂아 버리잖아.
대체 넌 뭐냐?"
나를 관리하는 나만의 방식.
매일 밤 10시에 잠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납니다.
630일 넘게 빠지지 않았어요.
아침에 달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커피와 콜라는 거의 마시지 않고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야채와 두부 위주로,
제가 만든 음식들로요.
감기 기운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에 갑니다.
아픔을 참지 않기로 했어요.
그 결과,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이후
2년 동안
몸살로 고생한 적은 없습니다.
소리엔 여전히 예민하지만
이제는 누우면 잠들고
아침까지 깊게 잡니다.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저는 예민해서 망한 게 아니라,
예민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예민한 몸을 돌보는 법을 배웠고,
그 덕분에
지금은 몸도 마음도
나에게 맞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