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렘이 먼저 사라질까요
친구:
왜 수영을 하냐고?
추운 날은 망설이지 않냐고?
이유라고 해야 하나...
수영장에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한테는 딱 한 컷이 있어.
수영장에 들어가서
물속으로 잠수하는 그 첫 순간.
그 장면.
물속이라 땀은 안 나는데,
몸엔 열이 있잖아.
운동해서 데워진 그 느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마지막에 찬물로 한 번 더 씻어.
그 처음부터 끝까지의 느낌이
지금까지도 계속 좋아.
이상하지?
이런 생각도 들어.
처음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은데
계속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게 될까 봐
그게 조금 신경 쓰여.
그래도 아직은 좋아.
그래서 수영장에 가는 날이면 기대 돼.
잠시 생각하다가 친구가 덧붙였다.
너도 새벽에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예전엔 이런 느낌 있지 않았어?
수영을 시작한 지 1년 정도되는
친구의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했다.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단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있었다.
이건 운동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
사람 관계든, 일이든
적응이라는 과정 앞에서는
대부분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느낀다.
처음엔 좋다.
의식하게 되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다 익숙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당연해지고 늦어진다.
운동도 그렇다.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또렷하게 남는다.
그래서 더 느끼고 싶어진다.
사람 만남도 비슷
한 달에 한, 두 번 만나는 건
이미 충분히 성실한 관계다.
이걸 일주일에 일곱 번으로 바꾸는 순간,
그 만남은 기다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매일 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내가 말하는 '매일'은
의욕적인 마음으로 채우는 매일이 아니다.
이유가 흐려진 채로 굴러가는 매일이다.
왜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다음은 대개 비슷하다.
늦어짐이다.
내 경우엔
새벽 기상과
새벽에 하는 글쓰기, 독서가 그렇다.
나는 여전히 매일 한다.
그걸 멈추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매일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일어나기 싫어진다.
30분만 더 자고 싶고,
4시에 일어나던 걸
오늘은 5시,
오늘은 6시로 미루고 싶어질 때도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완전히 놓지는 않더라도
이 리듬을 계속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책도 매번 감동을 주지 않는다.
어려운 책을 만나면
읽기가 싫어진다.
새벽도 싫어지고,
글쓰기도 싫어지고,
그 마음이 새벽 전체로 번진다.
미라클 모닝이 뭐라고 다 하기 싫다.
안 해도 문제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럴 때 이걸 의지의 문제로
몰아붙이지 않으려 한다.
요즘 내가 붙잡는 기준은
매일 하느냐가 아니다.
왜 시작했는지를
아직 느낄 수 있느냐다.
매일이 나쁜 게 아니다.
이유가 지워진 매일이 문제다.
습관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습관이
처음의 감각까지 지워버린다면,
시작했던 이유를 잊게 만든다면,
그건 지속이 아니라 익숙한 관성이다.
좋았던 감각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기 전에,
속도를 조절한다.
아직 설렘이 남아 있을 때.
좋음이 당연해지지 않도록
나만의 거리를 남겨두는 것.
덜 하자는 말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어쩌면 지속한다는 건
매일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걸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남겨두는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일을 선택한다.
다만 이유가 닳아버리는
매일은 선택하지 않는다.
습관은 유지하되, 감각은 관리한다.
그게 내가 지속을 대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