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예민해. 뭘 그리 까다롭냐?"
어릴적 종종 듣던 말이다.
예민한 사람은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다 느껴버려서
거리를 배운다.
나는 사람을 가린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반갑다.
반가운 걸 숨기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다고 선을 그은 사람.
내 관심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선이 없다.
얼굴 보며 미팅을 했는데도
돌아서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업무 대화 내용은 세세히 기억하면서.
아니다 싶으면 멈춘다.
미련 없이.
설명 없이.
셀프 고립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예전엔
그게 미안했다.
소심하기도 했고 신경도 꽤 썼었다.
차갑다는 말도 들었고,
까다롭다는 평가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됐다.
이건 성격이 아니라 생존이라는걸.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으아악!"
비명은 자동 반사다.
아는 사람들은 장난을 치지 않는다.
세상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니까.
소리는 특히 그렇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바람이 피부에 닿는 촉감에 자주 뒤척인다.
타이머가 꺼지는 소리엔
잠에서 확 깨버린다.
여름엔 선풍기를 거의 쓰지 못한다.
가족 중에는
선풍기 두 대를 켜고 자기도 한다.
나는 그 소리와 바람을
몸이 먼저 거부한다.
추위도 심하게 탄다.
손발은 늘 차갑고,
겨울엔 몸이 굳는다.
요즘처럼 털 신발이 없던 20대엔
겨울에 발가락 동상은 늘 내 몫이었다.
이런 몸으로
사람의 말투와 표정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애써 모른 척하면 몸이 먼저 아프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닫는 쪽을 택하게 됐다.
상대의 잘못을 봐도
예전처럼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말해도 상대가 바뀌는 게 아니더라.
오해가 생기고 나를 원망하기도 하더라.
내 안의 억울 쌓인다는 걸 많이 겪었다.
오십이라는 나이가 그걸 말해준다.
참 고맙다.
예전에 누군가는 나를 두고
고슴도치 같다고 했다.
예민하고,
모든 걸 다 느끼고,
가시를 세우는 사람 같다고.
그때는
그 말이 조금 불편했다.
내가 너무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그 가시는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게 아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했던 거리였다.
나는 사람을 가린다.
하지만 내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엔,
한없이 잘한다.
가족,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보고, 듣고, 기억한다.
그 사람들의 성향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어디서 힘들어질지,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도 느낀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먼저 몸에서 반응한다.
그게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
나에게는 그게 애씀보다는 본능에 가깝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내가 안전해질 수 있는 거리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게 예민한 내가
사람 곁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