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절박하다."
라는 말을 혼자서 되뇐다.
이 말이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지금 내 삶은,
겉으로 보면 비교적 평온하다.
친정도, 시댁도, 우리 집도
큰일 없이 흘러가고 있다.
아프셨던 분들은 돌아가셨고,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이제는 정말
내 몫을 챙기며 살아가는 시간이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어쩌면
절박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일테다.
그런데도 나는, 절박하다.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하긴 어렵다.
다만 이루고 싶은 게 아직 많고,
내가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감각이
자꾸 마음을 건드린다.
지금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새 출발의 지점에 서 있다.
나이 오십에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을 많이 쓰게 한다.
회사를 떠나던 날,
예전 직장 상사가 이력서를 주면
이직 할 곳을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그 제안을 받지 않았다.
그때 내 안에서는 이런 생각이 더 컸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예전의 나는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
예순까지 버티려면
임원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내 상태보다 그들의 평가를 더 살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점점 낯설어졌다.
그 과정을 지나며 알았다.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가고 싶지는 않구나.'
마음을 정리하고 나서야
다른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은 대학생,
딸은 고등학생.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시기였다.
불안은 아주 현실적인 얼굴로 찾아왔다.
남편에게 투잡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고,
주말마다 시댁 농사일을 도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 당신 때문에 내가 못 그만두는 거잖아.'
어느날 남편을 향해 원망이 올라왔을 때
많이 놀랐다.
곧 알게 됐다.
남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내 인생을 아직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그제야 이런 질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
스스로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완전히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내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직 진행 중이었다.
그 다짐이 어느 순간부터는
절박함처럼 느껴졌다.
끝난 다짐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선택에 가까웠다.
여전히 마음은 조용하지 않지만,
이 마음은 나를 불안하게 하기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게 만든다.
나를 믿어보려는 마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태도.
내가 붙잡고 있는 건 그런 쪽에 가깝다.
다짐이라기보다 방향을 다시 잡게 됐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버티겠다는 결심이 아니다.
적어도 내 선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쪽으로.
그 마음이 내가 느끼는 절박함에
조금 더 가까운 말인 것 같다.
이 절박함은 나를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대신 자꾸 묻는다.
'이 선택은 정말 네가 선택한 게 맞니?'
앞날을 다짐하기보다,
오늘 하루에서 내가 미뤄둔 선택 하나를
다시 꺼내보려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절실하다고 느낀다면,
그 절박함이 불안인지,
아니면 움직이려는 신호인지
잠깐만 들여다봐도 좋겠다.
타인게 맡겨두고 있던 선택이
하나 있다면 그걸 다시 내 손으로
가져오는 것부터.
지금의 내게는 그 정도면
다음으로 가기엔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