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잠이 깬 것 같았다.
분명 눈은 뜬 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었는데 말이 안 나왔다.
조명을 켜려 했는데 불이 안 들어오고,
핸드폰을 잡으려 했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누군가를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이게 뭐지?'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몸은 멀쩡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느낌.
누워 있는 채로
상황만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거실로 나갔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정말 나였는지
꿈속의 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거실 소파에 딸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소파에 누워 있어?"
분명 말을 건 것 같은데
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금 나를 깨워줘!"
"나 좀 도와줘!"
남편에게도 외쳤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 순간 제일 무서웠던 건
아무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확 돌아왔다.
숨을 헐떡이면서.
시계를 보니 잠든 지 10분, 길어야 15분쯤.
잠들자마자 그 꿈으로 바로 빠져든 거였다.
한동안 숨을 고르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다시 잠들었다.
완전히 깬 채로 밤을 보낸 건 아니었다.
무서웠다.
분명 겁이 났다.
그런데도 다시 잠들었다.
아침이 되고 나서야
이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예전의 나라면 그 상태로 두 시간은
눈을 뜨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잠 다 잤다."
"이제 하루 망했다."
그렇게 단정하고
몸보다 먼저 하루를 포기했을거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무서웠지만 잠은 들었고,
아침은 왔고, 나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그러다 문득 아무 상관도 없는 생각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을 생각들이다.
운동하러 나온 김에
차 키를 가지고 나올 걸 그랬나.
집 근처로 이동할 수 있었을 텐데.
아침에 출발할 때 멀지 않을까.
차를 세워 둔 곳을 떠올려 보니
걸어서 2분 거리였다.
멀다고 느꼈던 건
사실 거리 때문이 아니라 잘 걷지도 않던
예전의 습관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조금만 어긋나도
이건 잠을 못 잔 거다.
이런 꿈을 꿨으니 오늘은 끝이다.
그 정도 거리는 걸어 가기에 멀어.
움직이느라 지치겠다.
그렇게 자동으로 떠오르던 생각들.
지금 와서 보니
그것도 나 자신을 향한 일종의 편견이었다.
이런 상태면 안 된다.
이러면 망한 거다.
이 정도면 회복이 안 된다.
그 기준들이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거다.
무서웠던 꿈 하나가
하루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 거리는 걷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더 좋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