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욕망〔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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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내 소원이라면 나를 종으로 부려먹은 바로 그 연놈들을 종으로 내가 부려먹고 싶다는 그거요. 하지만 그렇게야 안 되겠지요.”

평산은 덜미를 잡힌 것 같았다. 사냥꾼은 자기이며 매는 귀녀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줄은 귀녀가 쥐고 있고 자기는 재주 부리는 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산은 술에 흠씬 취하여 다리가 지각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노는 것같이 저도 모르게 계획을 발설하였고 귀녀의 동의를 구하였다. 귀녀의 하얀 이빨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그러질 않고 일이 될 성싶소? 그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한 치의 땅도…… 계집아이라만 남겨야, 아시겠어요?”

속삭였다. 그러나 평산에게는 천둥이 머리를 치는 것같이 들렸고 계집의 뜨거운 입김은 오뉴월 단볕을 받은 강변 모래가 날아오는 것 같았으며 수렁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박경리 토지. 2편 11장 황금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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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엉덩이를 들썩인다.

“새끼들이 떡 돌라고 우째 지랄을 하던지.”

했으나 칠성이는 먼저 주지 그랬느냐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말없이 돼지처럼 먹는다. 아이들은 급하게 먹다가 목이 메어 숨을 몰아쉬고 눈물까지 글썽였으나 먹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임이네 역시 국물을 닦아가며 부지런히 씹어 삼킨다. 네 식구 먹을 만큼 보낸 떡을 제각금 흉년 만난 들쥐처럼, 굶주린 이리 가족처럼 으르렁대기라도 할 듯이, 조금이라도 제 입에만 많이 넣으려고 경쟁이다.


<박경리 토지. 2편 12장 자수당의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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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받으며 무수히 머리를 조아리는 귀녀의 옆모습은 처절하고 아름다웠다. 칠성이는 그 얼굴이 두려웠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달려들어 초를 넘어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움찔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귀녀는 나긋한 손을 들어 마치 바람에 날리는 꽃잎같이 촛불을 껐다. 칠성이 입에서 깊고 긴 숨결이 토해졌다. 그 숨결에 나간 장사같이 귀녀의 주변을 맴돌 듯 몸을 움직이던 처녀는, 그렇다, 처녀는 신성한 처녀성을 한 사나이에게 바치기 위하여 목욕재계를 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자수당 미륵불에게 뜨거운 소망을 기원하기 위하여, 음란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 거짓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 살인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 오로지 소망을 들어달라는 다짐만이 간절했을 뿐이다. 신은 이 여자에게는 악도 선도 아니었다. 오로지 소망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 영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일이었을 뿐이다.


<박경리 토지. 2편 12장 자수당의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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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과 12장에서는

욕망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평산의 소원은 정의가 아니라

뒤집힌 서열이었고,

귀녀의 기도는 선악이 아니라

오직 성취였다.


신 앞에서조차

사람은 더 낮아지기보다

더 위로 올라가기를 원한다.


머리를 조아리는 몸짓과

속삭이듯 발설되는 계획은

모두 같은 말처럼 들린다.



떡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부끄러움도 질서도 사라진다.

배고픔 앞에서 인간은

아무 설명 없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결핍과 불안, 탐욕과

가족의 생존 본능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현실 앞에서

체념 섞인 푸념조차 사치가 된다.


인간의 품위보다 동물적인 식욕이 앞서고,

체면과 도덕보다 당장의 생존이 우선된다.

가난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 장면은 슬프도록 분명하다.


입 안에 욱여넣는 떡과

글썽이는 아이들의 눈물.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먹을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절박함의 신체적 반응이다.


가난은 인간을 짐승처럼 만들기도 한다

도덕과 체면, 사랑보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가 되고,

가족조차도 결핍 앞에서는 경쟁자가 된다.


그 모습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 시절 우리네 부모들이 살아내야 했던

지워지지 않는 현실이다.



'살기 위해서'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것을 허락하는지,

토지는 아무 설명 없이

그 장면들만 내민다.


삶이란 참으로 처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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