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평생을 익숙하게 들어온 바람.
그럼에도 늘 그 소리에 멈칫했다.
그 바람이 언제나 차가웠던 건 아닐진대.
왜 그랬을까.
깊은 생각도 없이 그랬다.
소리만 들어도 겁을 먹었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내겐 어렵겠지.
비실이인 나는 날아갈지도 모르지.
바람에 걸어도 무겁기만 하겠지.
나가지도 않으면서 지레짐작으로
별생각을 다 했더랬다.
'난 안 된다.'
라는 명제가 이미 박혀 있었으므로.
어떤 부분은
겁도 없다는 말을 들으며 쉽게 하면서도,
반대로 이런 데서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은 다 잘 할 수는 없다는 말로
변명으로 나를 집 안에 가뒀다.
내가 만든 틀 안에 머물렀다.
'이 정도면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거야.'
혼자 안도를 하며 건강하게 산다고 믿었다.
변화는 어느 날 찾아왔다.
정말 갑자기.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게는
운명이었을지도.
종교는 없지만 유신론자인 나는
운명론을 믿나 보다.
언젠가부터
내 길은 정해져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흔들리고 두려우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내 집이 우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오히려 안심했다.
나오기만 하면 될 테니까.
운동복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운동화가 없으면 어떤가
일단 나가면 될 터이니.
아들이 작다고 내어 놓은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낯설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어떤 쾌감이 나를 불렀다.
그날부터 어떻게 해서든 매일 나갔다.
우물 안을 하나하나 짚어 올라가듯
집을 나설 때면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다.
바깥세상의 빛을 처음엔 몰랐다.
무엇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볼 수 있는 눈이 없던 탓이었다.
시간은 흘렀다.
매일 나가고 달렸다.
조금씩 거리는 늘었고
내 안에 깊이 박혀있던 장벽이 허물어졌다.
비로소 눈이 트이던 그날.
지금은 그날이 언제였는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나를 볼 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가면 된 거다.
바람 소리가 매서운 날은
지금도 잠깐 멈칫한다.
그래도 이미 운동복을 입었다.
습관은 몸을 먼저 부른다.
내가 이런 삶을 살 줄은 몰랐다.
웃음이 난다.
미라클 주니 방은 새벽 네 시부터 분주하다.
말들이 오가고, 웃음이 튄다.
혼자 키득거리는 이 방이
이상하게 넓다.
각자의 루틴에 들어가면
잠시 고요가 온다.
나도 책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팅, 하고 몰입이 깨지는 순간.
졸음이 척하니 손을 내민다.
그때다.
그 손을 뿌리치고 일어선다.
현관 앞으로 가, 운동화를 신는다.
이제 바람 소리는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는다.
문을 여는 순간 닿는 공기.
몸이 먼저 안다.
오늘도 나갔다 왔다.
그러면 된다.
이웃님,
당장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은 문 앞까지 가보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 문을 열고 잠시 나갔다 와도 되고요.
5분을 걸어도 돼요.
멈칫해도, 결국 문을 여는 쪽은
당신일 테니까요.
당신의 그 시작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