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시간표처럼 정리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엉킬 것 같은 날.
엊그제 금요일이 그랬다.
아침부터 손끝이 바빴다.
그날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손을 멈추면 모든 게 어긋날 것 같았다.
남편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하루 종일 병원을 돌았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가 드실
국과 반찬을 만들었다.
굴국, 콩나물 북엇국, 소고기 무국, 된장찌개,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마지막으로 깍두기까지.
동선과 시간을 계산하고
사용 가능한 냄비, 프라이팬을 나열해
최적으로 움직이려 했다.
오후쯤 오신다고 했기에
그전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새벽 루틴을 마치고
8시부터 무를 썰어 소금에 절였다.
커다란 무 열 개를 혼자 썰고 나니
검지에 물집이 잡혔다.
일을 하는 손인데도
물 한방을 안 묻히는 손처럼 엄살이다.
김치 양념을 준비하고
모자란 건 마트에 가서 급히 채웠다.
굴국과 콩나물 북엇국을
동시에 불에 올렸다.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로지 부엌, 그 자체에만 몰입했다.
잠깐 짬이 나면
후다닥 컴퓨터 앞에 앉아
달리기 포스팅을 올리고
토지 완독 챌린지 글을 썼다.
또 틈이 나면
미라클 주니 방에 들어가
벽타기를 하고 하트를 붙이며
리더로서 답글을 남겼다.
이쪽에서 번쩍, 저쪽에서 번쩍
홍길동처럼.
굴국은 금세 완성.
콩나물국은 은근히 끓이는 동안
다른 냄비에 소고기를 넣고 불을 켠다.
이건 뭉근히 오래가야 한다.
중간중간 절여둔 무를 뒤적이며
상태를 보고 찹쌀 풀 준비했다.
멸치 액젓과 새우젓을 꺼내고
다른 재료까지 한데 모아
믹서기에서 드르륵.
맛을 본다.
깍두기는
작년 겨울 처음 만들었다.
처음치고는 먹을만했고
그 뒤로 네 번쯤 더 담갔다.
1년 만에 다시 만드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간을 보니 그 맛이 스르륵 올라왔다.
전엔 레시피를 보며 계량컵으로 맞췄지만,
이번에는 혼자서도 정말 후루룩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정오를 넘겼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배고프다는 말없이
각자 방에서 핸드폰 세상이다.
라면과 치킨이란다.
직접 부르고 알아서 먹어준다.
난 사발면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후후 불어가며
눈은 이웃님들 글에 두고
입은 헉헉 바쁘다.
이런, 가슴이 막힌다.
배에서 꾸욱꾸욱 뭉치는 신호.
체했다.
천천히 먹으려고
일부러 글을 봤는데
마음은 이미 앞서갔나 보다.
소화제를 먹고
화장실을 다녀와 숨을 길게 쉰다.
이럴 때 일 수록 실수한다.
침착하자. 천천히.
심호흡을 몇 번.
조금 늦으면 어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지.
오후 세 시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남편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김치 양념을 묻히면 된다.
간을 기가 막히게 보는
그분의 결재가 남아 있다.
병원 일정이 늦어져
여섯 시가 되어 돌아왔다.
저녁상을 차리고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들도 눈치껏 움직여 같이 상을 도왔다.
척척 상이 차려지고
허허 호호 이야기 나누다 돌아서니
부엌은 어느새 얌전해져 있었다.
깍두기도 한 번에 오케이.
모든 게 클리어.
그날의 하루는
다 쓰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김치 2통을 만들고 이건 우리 거. 다른 사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