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27일차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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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집을 위해서 서럽어할 사람이 이 천지간에 누가 있겠소. 찢어 죽이고 싶게 밉지만은 사람우 정이…… 그, 그 정이 더런 기구마.”

강포수는 울먹인다.

“알았소, 알았소. 아무 말 말고 여기 기다리고 있이소. 마님 심정을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은,”

김서방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갔다. 강포수는 그냥 땅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창칼 같은 흰 이빨을 세우고 달려오는 멧돼지 모습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강포수가 눈을 들었을 때 해를 가리며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솜뭉치 같이 하얀 구름이.


<박경리 토지. 3편 11장 구제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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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녀의 해산달은 가까워오는 모양이었다. 강포수는 가끔 귀녀 배 속의 아이는 자기 것이 아닌가고 생각해보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물거품같이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귀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탄생은 하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귀녀의 죽음, 그것은 강포수에게 범람하는 강물이었다. 강포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흘러내려 가는 시뻘건 흙탕물이다.


<박경리 토지. 3편 11장 구제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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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얼마나 잔인하게 정확한가 하는 점이다.


강포수는 여전히 거칠고,

여전히 투박한 사람인데

그의 말은 이전과 다른 곳에서 나온다.


“그 계집을 위해 서러워할 사람이

이 천지간에 누가 있겠소.”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불쌍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 여자를 위해 슬퍼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다.


여기서 강포수는 유일하게

귀녀를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울먹인다.

자기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사람의 정이 더럽게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귀녀의 배 속 아이가 자기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탄생은

곧 귀녀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여기서 강포수의 마음은

기대도, 희망도, 욕망도 아니다.


막을 수 없는 일을

혼자 알고 있는 사람의 침묵이다.


귀녀의 죽음이

강포수에게 ‘범람하는 강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다.


강포수의 장면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연민과 책임,

그리고 인간적인 슬픔에 가깝다.



토지는 인물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착해지지도,

깨닫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말 몇 마디로 드러낸다.

누군가의 불행을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참으로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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