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집을 위해서 서럽어할 사람이 이 천지간에 누가 있겠소. 찢어 죽이고 싶게 밉지만은 사람우 정이…… 그, 그 정이 더런 기구마.”
강포수는 울먹인다.
“알았소, 알았소. 아무 말 말고 여기 기다리고 있이소. 마님 심정을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은,”
김서방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갔다. 강포수는 그냥 땅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창칼 같은 흰 이빨을 세우고 달려오는 멧돼지 모습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강포수가 눈을 들었을 때 해를 가리며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솜뭉치 같이 하얀 구름이.
<박경리 토지. 3편 11장 구제된 영혼>
귀녀의 해산달은 가까워오는 모양이었다. 강포수는 가끔 귀녀 배 속의 아이는 자기 것이 아닌가고 생각해보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물거품같이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귀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탄생은 하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귀녀의 죽음, 그것은 강포수에게 범람하는 강물이었다. 강포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흘러내려 가는 시뻘건 흙탕물이다.
<박경리 토지. 3편 11장 구제된 영혼>
토지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얼마나 잔인하게 정확한가 하는 점이다.
강포수는 여전히 거칠고,
여전히 투박한 사람인데
그의 말은 이전과 다른 곳에서 나온다.
“그 계집을 위해 서러워할 사람이
이 천지간에 누가 있겠소.”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불쌍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 여자를 위해 슬퍼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다.
여기서 강포수는 유일하게
귀녀를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울먹인다.
자기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사람의 정이 더럽게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귀녀의 배 속 아이가 자기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탄생은
곧 귀녀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여기서 강포수의 마음은
기대도, 희망도, 욕망도 아니다.
막을 수 없는 일을
혼자 알고 있는 사람의 침묵이다.
귀녀의 죽음이
강포수에게 ‘범람하는 강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다.
강포수의 장면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연민과 책임,
그리고 인간적인 슬픔에 가깝다.
토지는 인물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착해지지도,
깨닫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말 몇 마디로 드러낸다.
누군가의 불행을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참으로 쓰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