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사랑주니 : 왜왜, 무슨 일 있어?
딸 : 아니야, 심각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사랑주니 : 왜 그러는데? 힘들다는데 걱정되지.
딸 : 실은... 내가 좋아하는 웹툰 주인공이...
사랑주니 : 푸하하. 웹툰 이야기야? 안 들을래.
딸 : 아냐 아냐. 들어. 엄만 들어야 해.
사랑주니 :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안 들을게.
딸 : 힘들다고 말을 꺼낸 건 엄마가 들으라는 거야. 엄마는 내 말을 들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어.
사랑주니 : 하하. 그래서 웹툰이 뭔데?
딸 : 내가 좋아하는 웹툰의 최애가 지금 병에 걸렸어. 왜 내 최애는 다들 아프는 걸까.
사랑주니 : 네가 이상한 녀석들을 좋아해서 그래.
딸 :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그래서 내가 힘들다니까.
사랑주니 : 그래서 내가 어떤 답을 해주길 바라?
'뭘 그런 거로 힘들어하냐?' 이렇게 말할까?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딸이 힘들구나.' 이렇게 말하면 될까?
딸 : '그랬구나.'라고 말해줘.
사랑주니 :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 괜찮아? 하하.
딸 : 응. 좋아.
아이들은 종종
정답이 필요해서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저 "들어달라."는 신호를
힘들다는 말로 보내올 뿐이다.
심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은 이야기.
그 이유가 웹툰이든,
친구든,
시험이든,
어른의 기준으로는
얼마든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나는 웃었다.
웹툰 이야기라며 피했고,
딸은 다시 말을 붙잡았다.
"엄마는
내 말을 들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어."
그 말에 웃음이 멈췄다.
아, 그렇지.
힘들다고 말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듣는 사람이 되어 있었구나.
아이에게는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아니라
자기 편이 필요했다.
"그랬구나."
그 한 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다.
상황은 그대로였고,
웹툰 주인공은 여전히 아팠지만
아이의 표정은 풀어졌다.
사람은 종종
힘든 이유보다
힘들다는 마음이 먼저다.
어른인 나도 그렇다.
답을 듣고 싶어서라기보다
"아, 그렇구나"
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답은 필요 없고,
설명은 과하다.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는 말
하나면 된다.
그 순간 내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배웠다.
부모의 말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마음은 멀어질 수 있다는 걸.
어쩌면
손을 잡아달라는 이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우선의 말은
언제나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