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해〔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29일차

by 사랑주니



900%EF%BC%BF20260203%EF%BC%BF214632.jpg?type=w1



아이들에게는 천성이 없는 것일까. 아니, 사람에게는 본시 천성이 없는 것일까. 삼 년 동안 아이들은 울고 투정하던 버릇이 없어지고 말았다. 넘어져서 이마에 피가 흘러도 울지를 않았다. 물가에서나 혹은 길가에서 끈질기게 흙을 움켜쥐고 목을 치는 잡풀같이, 비가 쏟아지면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문질문질 썩어가다가 속잎이 트고 다시 자라는 풀, 가뭄이 계속되어 강물이 마르고 땅이 갈라지고 그래도 물기를 꼭 껴안고서 견디어내는 잡풀, 아이들은 아무것이나 잘 먹었다.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여름에도 몸에는 이가 끓었으며 꼬챙이 같은 팔다리에는 모기가 덤벼들었고 부스럼이 난 머리통에는 쉴 새 없이 파리가 엉겨붙어 있었으며 아이들은 먹는 풀을 알고 있었으며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메뚜기를 구워 먹고 개구리를 구워 먹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남의 밭에 서 호박을 따오고 무를 뽑아오고 콩을 훔쳐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박경리 토지. 3편 15장 돌아온 임이네>




900%EF%BC%BF2026%EF%BC%8D02%EF%BC%8D04T05%EF%BC%BF40%EF%BC%BF32.510.jpg?type=w1




이 문장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감정보다

이 아이들이 사람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먼저 와닿는다.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것.

넘어져 피가 나도,

얻어맞아도 울지 않는다는 것.

이미 너무 많이 닳아버렸다는 뜻이다.



작가는 아이들을 사람에 비유하지 않는다.

잡풀에, 흙에, 벌레에, 물기에 비유한다.


살아 있기 위해 몸을 낮추고

환경에 맞춰 버티는 존재로 그린다.


먹을 수 있는 풀을 알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남의 밭에서 훔치는 법을 아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모든 일을 하면서도

아무 감정이 없다는 점이다.


피가 나도, 배가 고파도, 맞아도

감정은 점점 쓸모없는 것이 된다.


아무 것이나 먹고, 아무 데서나 잠들고,

훔치는 법까지 배워야 했던 아이들의 삶은

도덕의 문제 이전에 생존의 문제다.


가난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천성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세계가

드러난다.



토지는 묻는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고도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흐트러진 마음은 밖에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