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시기심 〔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30일차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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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넘쳐흐르는 생명력, 조금만 땅이 젖고 햇빛만 있어도 무섭게 자라나는 잡풀 같은 생명력은 교활한 지혜를 위해 여유를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 눈에 그가 거들먹거리는 것같이 보였다는 것은 윤씨부인이 도와준다거나 먹고 입는 것이 자기들과 같아졌다는 시샘 때문에 그렇게도 하려니와 그 무성한 생명력에 압도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서 더욱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아낙들은 옛날로 돌아간 그 미모에 약이 올랐을 것이다. 이제 임이네한테서는 찌든 궁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놀랄 만큼의 회복이었다.

‘살인인의 제집이.’

두만네 마음에도 그 생각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년 봄에 임이네가 마을에 찾아들었을 때는 살인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불쌍했던 그가 지금은 그 살인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박경리 토지. 3편 18장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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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습격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임이네를 바라보는 시선에

묘한 불편함이 있다.


연약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너무 빨리 회복해버렸기 때문이다.


조금만 비가 내려도

금세 살아나는 잡풀처럼,

임이네의 생명력은 사람들의 예상과

감정의 속도를 앞질러 간다.


고난을 겪은 사람은

초췌해야 하고,

미안해 보여야 하고,

불행의 흔적을 오래 달고 있어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암묵적인 기대가

그녀 앞에서 무너진다.


그들은 임이네가 거들먹거린다고 느끼고,

도움을 받아 먹고 입는 것이

자기들과 같아졌다고 시샘하고,

되찾은 미모에 이유 없이 약이 오른다.


그 감정의 바닥에는

사실 다른 것이 깔려 있다.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너무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감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임이네를 향한 연민의 이유조차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살인인의 가족’이라서 불쌍했고,

이제는

‘살인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불쌍하다.


연민조차 사람의 형편과 분위기에 따라

쉽게 방향을 바꾼다.



토지는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타인의 불행을 어떻게 소비하고,

타인의 회복을 어떻게 불편해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임이네의 생명력은

그녀를 구해준 힘이지만,

동시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풍경이 된다.


이 장면은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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