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아이들〔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32일차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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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이런 것이며 굶주림엔 체모가 없는 것이다. 제사 음식을 마을에 돌리고 혼례장을 찾아온 각설이떼에게는 술밥이 나누어지고 생일에는 며느리 손이 커서 살림 망하겠노라 하면서도 떡시루에 칼질하는 시어머니 얼굴에 미소가 도는 그런 인정과 우애를 사람들은 순박한 농민들 기질이라 생각하지만, 먹이와 직결되는 수성이 또한 농민들의 기질인 것을. 풍요한 대지, 삭막하고 척박한 대지, 대지의 그 양면 생리는 농민의 생리요, 농민은 대지의 산물이다.


<박경리 토지. 3편 21장 바닥 모를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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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21장에서

이 장면을 읽으며

인간의 생존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천성이 없는 것일까.”


아이들을 묻는 질문 같지만

사실은 이 세계를 향한 질문처럼 들린다.


아이들은 울지 않는 법을 배운다.

넘어져 피가 나도,

배가 고파도,

매질을 당해도

울지 않는 법을 먼저 익힌다.


그것은 성장이라기 보다는

환경에 맞춰 깎여나간 결과다.


이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선함도 악함도 아닌

살아남는 요령이다.


잡풀이 물과 햇빛만 있으면

무섭게 자라나듯

아이들도 그렇게 자란다.


뽑히고 짓밟히고 썩어도

다시 돋아나는 생명력.

그 생명력은 숭고하지 않다.

아름답지도 않다.

다만 집요하고 끈질길 뿐이다.


먹을 수 있는 풀을 알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메뚜기와 개구리를 구워 먹고,

남의 밭에서 호박과 무를 뽑아온다.


이 모든 것은 적응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불쌍한 존재라기보다

너무 일찍 현실을 배운 존재로 보인다.


울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배고픔 앞에서는 체면도 도덕도

사치가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 것이다.


아이들이 이 세계에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생존 전략이 된다.


토지는 아이들을 통해 묻는다.

천성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천성이란 것이

이런 환경 앞에서는

아무 힘도 갖지 못하는 것인지.


이 장면의 아이들은 악하지 않다.

그러나 순수하지도 않다.


그들은 이미 이 세계의 논리를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토지를 읽을 수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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