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아, 괴롭다.
사랑주니 : 엄마, 무슨 말이야.
엄마 : 어제도 잘 못 잤어. 오늘 아침 일찍부터 일하려니 벌써부터 괴롭구나.
사랑주니 : 밤엔 나도 잘 못 자. 근데 엄마는 매일 그러는 거야?
엄마 : 너도 이 나이 되어봐라. 매일이 괴로워.
사랑주니 : 아... 힘들어. 새벽 4시에 겨우 잠들었어.
남편 : 잠을 못 잔다는 게 이해 안 돼.
사랑주니 : 좋겠다. 부럽다. 몸이 너무 괴로워.
남편 : 당신은 그 괴롭다는 말을 툭하면 말하는 거 알아?
사랑주니 : 어? 내가 그랬어? 울 엄마가 매일 하던 말인데.
사랑주니 : 오늘은 몸이 살아나질 않네. 괴롭다.
딸 : 무슨 말이야?
사랑주니 : 넌 잠 못 자거나 피곤할 때 괴롭지 않아?
딸 : 그렇다고 괴롭다는 표현을 쓸 수 정도인가.
사랑주니 : 그 말 뜻을 잘 모르는구나.
딸 : 음... 글쎄,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사랑주니 : 부럽다. 넌 나보다 기초 체력이 좋고 대체로 잘 자니까 괴로울 정도는 없나 봐.
딸 : 히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괴롭다.’라는 말이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걸.
누군가는
“그 정도로?”라고 묻고,
누군가는
“매일 그렇다.”라고 말한다.
틀린 사람은 없는데 서로는 잘 모른다.
‘괴롭다.’라는 말이 엄마의 입에서 나와
이제는 내 입으로 건너왔다.
닮아가는 건지, 이해하게 된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예전엔 흘려보내던 말이
이제는 몸 안에서 멈춘다는 것.
엄마가 그랬을 때는
왜 그렇게까지 말할까 싶었는데
내가 같은 말을 꺼내고 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눌러 담은 소리였는지
감각으로 알아 간다.
엄마의 하루가
밤부터 시작됐다는걸,
잠을 못 잔 몸으로
또 하루를 살아야 했다는걸.
나는 지금 엄마를 닮아가는 중일까,
아니면 그 시간을 따라 걷고 있는 걸까.
딸은 아직 모른다.
‘괴롭다’는 말을
몸으로 이해해야 하는 순간을.
엄마에게 그 말은
밤을 버텨낸 다음 날의 아침이었고,
나에게는
잠들지 못한 몸이 겨우 꺼내는 한숨이었고,
딸에게는
아직 써본 적 없는 단어였다.
다행이다.
그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서.
당신도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쓰던 말을
그대로 꺼내고 있지 않나요.
그 말이 언제부터 몸에 머물렀는지,
오늘은 잠깐만 생각해봐도 좋겠습니다.
그 말이
몸에서 먼저 나온 건지,
입에서 먼저 나온 건지
그 말 뒤에 어떤 하루가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