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는 곳〔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35일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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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을 찌푸린다.

“세상에 사람겉이 미련하고 간장이 질긴 기이 또 있이까?”

영팔이 중얼거렸다. 용이는 잠자코 걸음을 함께할 뿐이다.

“미련하기만 한가? 또 얼마나 간사스런 기이 사람이리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하다가도 끼니 때가 되믄 입에 밥이 들어가니까. 저기 보라모. 살겠다꼬 모두 이고 지고 부지런히 가고 있는 장꾼들 보라니까. 참말이지 사는 기이 머엇인고 모르겠구마.”


<박경리 토지. 4편 6장 버선등에 기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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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로서 또 남아장부로서 조급함을 금하고 도량과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 자세가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에서 국가에 대한 충의심에 무비판이었다는 것, 유교를 바탕한 군왕(君王) 정신이 굳어버린 관념으로 되어버린, 그것은 비단 이동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양반계급의 생활태도, 정신적 주축이기도 했겠지만, 그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도에서 연해주 방면으로 방황하는 동안 차츰 국가의 운명이 자기 개인의 문제와 밀착해서 이동진을 어지러운 수렁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박경리 토지. 4편 7장 주막에서 만난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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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꾼하고 왜놈이 대로에서 시비가 붙은 게야. 왜놈의 짐을 져다준 모양인데 집균 말로는 품삯 안 준다는 게고 왜놈 말로는 짐을 지을 때 삯을 주었다는 게고. 어느 놈의 말이 참말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은 그렇다 치고 왜놈이 덤벼들어 집균을 두들겨패지 않겠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지. 한데 난데없이 순검 한 놈이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왔다 그 말이야. 설마한들 때리는 왜놈을 말렸으면 말렸지 합세를 할 줄이야.


<박경리 토지. 4편 7장 주막에서 만난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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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6장에서

영팔은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겉이 미련하고 간장이 질긴”

것들이라고 중얼거린다.

땅을 치며 통곡하던 사람들이

끼니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살겠다며 이고 지고 걷는다.


여기서 미련함은 결함이 아닌 기능이다.

통곡과 끼니가 모순되지 않는 세계에서는

감정이 진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몸이

다음 일을 해내는지만 남는다.


용이는 말이 없다.

“잠자코 걸음을 함께할 뿐”이다.

말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그냥 걸어간다.



7장에서

이동진의 문장으로 오면

같은 세계가 다른 이름을 얻는다.


선비의 도량과 여유라는 태도 뒤에는

국가에 대한 충의심,

유교를 바탕으로 굳어진

군왕 정신이 놓여 있다.


간도에서 연해주로 방황하는 동안

국가의 운명이 개인의 문제와 밀착하며

그를 수렁으로 끌어넣기 시작한다.


관념이 삶에 붙는 순간,

생각은 더는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주막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는

그 시절의 공기가 섞여 있다.

왜놈과 짐꾼의 시비가 벌어지고

말이 통하지 않는 소리와 주먹이

먼저 오간다.


구경꾼이 모여드는데도

장면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누가 누구를 지켜주는지

흐려진다는 점이다.


내 땅에서 내 사람이 안전하다는 감각이

이유 없이 닳아버리는 순간들.


맞는 쪽이 있고, 보는 쪽이 있고,

끼어드는 쪽이 있는데

끝내 누구도 정리해주지 않는다.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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