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앞에서 쓴다. 나를 부수기 위해

100일 동안 나를 쓰는 시간, 지금 그 여정 안에 있다

by 사랑주니


어제,

새벽은 개운했다.

아침은 상쾌했다.

낮은 명랑했다.

저녁은 여유로웠다.

밤은 환희였다.



오늘,

새벽은 두근거렸다.

아침은 충만했다.

낮은 졸리다.

견딜 수 없는 졸음 속에 있었다.

산만했다.

갈피를 못 잡았다.



감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이 흐름은 뭘까.

아니었나?

누구에게 묻고 싶다.



이웃님의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건

나는 나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는 것.

내가 글쓰기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는 것.

이토록 글 앞에서 고민하게 될 줄은 더더욱.



글감만을 고민하는 게 아니다.

주제, 구조, 이유.

왜 이 글을 쓰려는지.

그 속에 넣고 싶은 내 마음까지.



글은 현란한 표현이면 되는 줄 알았다.

은유, 비유,

멋진 문장들로 채우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글쓰기는 마음을 쓰는 일이었다.

기쁨, 화남, 즐거움 같은 감정을 나열하는 게 아니다.

그 감정의 뿌리를 꺼내는 일.

그건 일기와는 다르다.

일기는 나만 본다.

나만 생각하면 된다.



글쓰기.

책 쓰기.

누군가가 읽을 글은 다르다.

읽는 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만 알고, 나만 느끼는 글은 결국 닿지 않는다.

그런 글은 혼자 쓰면 그만이다.

거기엔 타인을 향한 마음이 없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나도 그리해야 하겠지.

가슴으로 깨달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

머리로 아는 건 지식일 뿐이다.

그런 글은 읽는 사람 입에서 "나도 알아"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내가 가슴을 꺼내 놓은 글은 다르다.

그 마음이 읽는 이에게 닿는다.

그럴 때 글은 감동을 일으킨다.

나도 그런 글을 만나면 한참을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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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가.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라고 말한다.

새벽마다 무의식을 마주한다고 말한다.

정말 나는 나를 알고 있을까?



삶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던가.

난 아직도 나를 모르는구나.



미라클 모닝을 왜 시작했을까?

변화했다고 자부했다.

내가 만난 기적을 나누고 싶었다.

『오십에 만드는 기적』을 썼다.

첫 종이책이었다.

간절한 열망으로 썼다.



정말 그런 걸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쓴 건 아니었을까?

두려움을 누르려 새벽에 일어난 건 아닐까?

내 불안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오늘도 글을 쓰며 질문을 한다.

나에게 강속구를 던진다.

내 심장에 박혀 그걸 깨고 싶다.

나를 부스고 새로워지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내가 나를 모른다는 걸 쓴다.

이 심장을 부숴 가루로 만들고 싶다.

그 안에 내가 아닌 나를 심고 싶다.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 강철 같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난 괜찮지 않다.

이 정도면 좋다고 다독이지 않으련다.

감정도 억누르지 않겠다.

눈을 똑바로 뜨련다.

그 시선을 깊게 나에게 박아보겠다.



폭포수 아래서 수련하는 도사처럼.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써야 하나 보다.



내 마음은 아직 아니다.

도달하지 못한 건 당연하겠지.

난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문장을 마주한다.

다시 시작한다.

나를 알아가는 지금.

글을 쓰며 나는 또 나를 살아낸다.





백일기적 - 나를 쓰는 시간.

100일 동안 글을 쓰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

지금 그 길을 걸어가는 중입니다.


100일 후, 변화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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