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찝하다〔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 37일차

by 사랑주니


900%EF%BC%BF20260212%EF%BC%BF081640.jpg?type=w1



웅성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서석방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나타난 일병은 일개 소매꾼 또는 병력이었다. 그들은 마을을 스쳐가고 왔을 뿐 머무르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그들을 본 것도 아니었고 동학란 때 이미 보았건만, 물론 그 당시에도 그들 보기를 사람백정 보듯 했었지만 그 후 들려오는 일들에 대한 소식은 갈수록 흉악한 것이어서 그들에 대한 증오와 공포심은 깊은 것이었다. 대궐을 짓밟고 들어가서 임금의 목포를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였다는 그들의 해악과 곳곳에서 자행되었다고 전해오는 가지가지 영괴, 마을 사람들은 멀리 두 길 위로 지나가고 있는 일병들을 공포에 차서 지켜본다.


<박경리 토지. 4편 10장 우관의 하산>





900%EF%BC%BF20260212%EF%BC%BF081713.jpg?type=w1





우관은 잠자고 있었다. 억제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참지 못한 김훈장은 한바탕 우국의 열정을 혼자서 토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있는 고관대작에 대한 욕설도 퍼부으며, 그러나 우관이 최참판댁에 다녀온다는 얘기를 하며, 조준구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내었을 때,

“아 그 양반 비록 개화풍이 들기는 했어도 뼈대 있는 집 자손으로서,”

하고 서울서는 문벌이 좋다는 맹신(盲信)에다 경의를 표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사바와는 하등 인연이 없는 중이오만 생시 윤씨부인의 심신을 생각 아니할 수도 없고 우리 절을 떠날 적 주시던 공양주였던 만큼 안부도 물을 겸 고인의 뜻을 이어줍시사하고 찾아왔더니만,”

우관은 교활하게 웃었다.


<박경리 토지. 4편 10장 우관의 하산>





900%EF%BC%BF2026%EF%BC%8D02%EF%BC%8D12T05%EF%BC%BF44%EF%BC%BF16.612.jpg?type=w1




4편 11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일병들이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데도

공포를 거두지 못한다.


동학란 때 이미 봤고,

그때도 사람백정 보듯 했지만,

그 뒤로 들려온 소문은 더 흉악해졌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건

한 무리의 폭력이라기보다

폭력이 어디서든 생길 수 있다는 감각이다.


길 위의 행렬을 보는 순간

마을은 먼저 작아진다.



김훈장은 고관대작을 욕하면서도

“뼈대 있는 집 자손”이라는 말 앞에서는

다시 공손해진다.


분노와 문벌에 대한 믿음이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한몸처럼 붙어 있다.


우관은 윤씨부인의 심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공양주였던 인연을 내세워 안부를 묻고

“고인의 뜻”을 이어보려 했다고 말한다.


말만 보면 틀린 데가 없다.

그런데 문장 끝은 이렇게 닫힌다.

‘우관은 교활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명분을 고르는 감각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어떤 말에 고개를 숙이는지 알고,

어떤 말에 마음을 풀어주는지 알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웃음.


불안한 사람은

오래된 기준에 더 쉽게 매달린다.


우관은 그 흔들림을 건드리지 않고

거기에 기대서 들어온다.

인연이고, 고인의 뜻이라고.


나는 왠지 찝찝하고 불쾌하다.




토지 3(1부 3권)



박경리2012마로니에북스









작가의 이전글겨울 공기를 열고, 나를 위해 한 걸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