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어라." 엄마가 부른다

by 사랑주니

그리움이란 단어를 쓰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엄마. 그렇지만 이 주제로 엄마를 쓰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엄마가 보고 싶어 미치지만 글로 내어놓기엔 내가 부족하고 그 마음이 아깝다. 고등학생 때부터 따로 살았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보다 혼자 자라버린 시간이 더 길다. 그래도 엄마 목소리는 아직 내 안 깊은 곳에서 낮게 울리고 있다.



얼마 전에 눈이 가득 내렸다. 밤부터 새벽까지 멈추지 않은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세상이 더 밝았다. 눈이 만들어 준 하양들. 땅에도 나무에도 차들도 온통 하양 하양. 집 앞의 놀이터도 다 덮였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동동거렸다. 어차피 아이들은 크고 깨워도 초등학생 때처럼 방방 뛰지 않을 테니 재미없다. 혼자라도 놀고 싶었다.


아파트 단지에서의 일요일 아침은 조용하다. 하얀 눈 위에 내 발자국 턱 하니 올렸다. 뽀드득 뽀드드득. 정말 그 소리다. 눈을 밟을 때만 나는 소리.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머리까지 울렸다. 쿵쿵툭 쿵쿵툭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리듬을 타듯 누가 볼세라 발끼리 춤을 췄다. 포옥 푸옥 눈이 꽤 많이 쌓였다. 신발이 잠겼다. 포근하다. 신발은 젖어 오는데 마음은 더 들뜨고 바람은 날카로운데 내 눈은 더 땡그레졌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혼자서 소심하게 눈을 굴렸다. 나를 때리는 제주 바람에 휘청. 하하하. 이유는 몰라도 웃음이 터졌다. 날리는 눈보라에 북극에 온 듯 오소소 오그라들어도 까르르 웃음이 났다. 누가 보면 미친년 같다고 할까,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동그랗게 동굴을 만들어 그 속을 향해 소리를 실컷 밀어 넣는다. 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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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눈이 자주 내렸다. 방학만 되면 눈이 올까, 창밖부터 살피곤 했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눈이다!” 하면 형제들은 벌떡. 졸린 눈도 없다. 창문을 열고 펄펄 내리는 눈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아침 먹고 나가야 한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끌어 내리던 엄마. 어떤 날은 다들 늦잠에 빠져 있으면 엄마가 먼저 나섰다. “눈 쌓였다!” 그 한 마디면 우리는 자동으로 튀어 올랐다. 이불을 걷어내지 않아도 됐다.


엄마가 부엌으로 가면 겁 없는 오빠는 맨발로 마당으로 폴짝. 발자국을 먼저 내버린다. “앗, 안돼 기다려. 같이 가야지!” 소리쳐도 소용없다. 오빠는 혀를 내밀며 더 콩콩 뛴다. 엄마에게 들킬까 살짝 나도 맨발로 디뎠다가 컥, 얼음 되는 느낌에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점퍼를 꺼내고 양말을 찾아 서랍을 들추고 장갑을 허둥지둥 집는다. “나도 나도!” 마당에 내 발자국 자리가 없어질까, 창문을 열고 먼저 소리 지른다. 동작 빠른 동생도 어느새 눈을 굴리고 있다.


눈을 굴리기만 해도 금세 커다란 눈사람이 됐다. 막대기는 팔이 되고 돌멩이는 눈동자가 된다. 장갑도 끼지 않고 달려들던 오빠 손이 빨갛게 변해도 호~ 호~ 불어대며 춥다는 말을 삼켰다.


“눈사람은 우리 집을 지키는 녀석이니까.”

아빠가 창고에서 여름내 바빴던 패랭이 모자를 꺼내 씌웠다.


“밥 먹어라.”

엄마 목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




햇님도 늦잠 자는 겨울 새벽. 아무도 없는 이 길에서 지금은 오직 나만 있다. 사람도 말도 없다. 숨소리와 발소리,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나간다. ‘아, 내가 지금 여기 있구나. 살아 있구나.’ 하고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이 순간이 나를 그 시절로 살게 한다. 이미 없는 사람을 떠올리는데, 내 숨이 더 깊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 내 발자국이 가장 먼저 남는다. 내가 첫발이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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