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장은 탕건을 고쳐 쓰고 집을 나섰다. 장꾼들은 독길을 가고 있었다.
‘크게 장래를 내다볼 위인은 못 되지만 내 처지에 그것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고 심성 고운 것만도 내게는 과람하지. 이런 난세에는 잘난 체하고 나서는나보다…… 그 애 하나가 우리 가문의 명줄이고 보면 명 보존하고 사는 게 첫째고.’
가통을 이어야 한다는 골수에 박힌 사상은 이 나라의 꽃이요 정기요 하며 의병의 항쟁을 흐느끼듯 칭송해 마지않던 감정을 누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동진이 연추로부터 오던 길에 주막에서 만난 돌팔이 의원 같은 늙은이, 김훈장을 안다던 그 늙은이의 교활한 섬속과 김훈장의 생각에 큰 차이는 없을 성싶다. 혹 손자가 있었다면 이놈 넌 무엇 하고 있느냐, 하며 호통을 쳤을지도 모른다.
<박경리 토지. 4편 16장 정이 자나쳐도 미치는가>
최참판댁 문전에는 예전과 달리 가취의 마름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들 중에는 조준구가 같이 치운 사람들이 있었다. 호열자에 죽은 사람 자리에는 물론 조준구의 입김이 닿은 사람을 앉혔으며 대세를 따라서 옛적부터 최참판댁 일을 보아온 사람도 점차 마음을 달리했다. 자연 그들은 드나들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았고 조준구 기색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아첨이 늘어갔다. 어쩔 수 없는 인심의 추세다. 간사스럽지 않던 사람도 간사스러워지고 의리가 있던 사람도 의리를 잃어버리고 땅속에 묻힌 사람은 말이 없으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들의 살 길이요 처자식의 얼굴이다.
인심도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요 거슬러 오르는 법이 없으니 서희의 처지는 고립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동이 피를 쏟고 자리에 누우면서부터 더더욱 그리했다. 사람들은 수동의 병을 심화병이라고도 했고 뇌짐이라고도 했다.
<박경리 토지. 4편 17장 어리석은 반골과 사악한 이성>
4편 16장에서
김훈장의 대목이 씁쓸한 건
비겁함을 꾸짖기 어려워서다.
김훈장은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가통’이라는 골수에 박힌 사상이
모든 감정을 이길 만큼 단단하다고
말할 뿐이다.
주막에서 만난 돌팔이 의원 같은
늙은이의 “교활한 심속”과 자신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거라는
자기 판단도 나온다.
손자가 있었다면 호통쳤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그는 자기 안의 기준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아니 얼마나 오래된 기준이
자기 목을 잡고 있는지 알고 있다.
17장에서
최참판댁 문전은 더 노골적이다.
조준구 쪽으로 사람이 바뀌고,
자리는 갈아 끼워지고,
마름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기색을 살피고 아첨이 늘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인심의 추세.”
간사스럽지 않던 사람도 간사스러워지고,
의리가 있던 사람도 의리를 잃는다.
땅속에 묻힌 사람은 말이 없고,
눈앞에 보이는 건 살 길과
처자식의 얼굴이다.
“인심도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라는 문장은
비유라기 보다는 판정처럼 들린다.
거슬러 오르는 법이 없으니
서희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흐름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토지』가 차가운 이유는 여기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마저
흐려지는 쪽으로 현실을 밀어버린다
소설 속 사람들은
점점 답답해지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