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을 좋아하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일상은 늘 같았고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삶이란
특별한 것이 없었으니까.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했다.
학교 친구들 아니면 직장 동료.
결혼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내 시선은 아이들이 먼저였고
시댁 행사를 챙기는 것이 일이었다.
아이들 원하는 곳을 다녔다.
키즈카페, 놀이터, 체험학습.
‘키즈’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찾아다니는 게 주말의 공식처럼
굳어 있었다.
하늘이 어땠는지는
아이들 숙제할 때나 보곤 했다.
한라산이 있다는 건
아이들 유치원 행사에 참석해야 느꼈다.
로맨스를 꿈꾸던 스물은
삶에 치이고 나를 잊어버린 오십이 되었다.
그렇다고 불행했다는 건 아니다
가족을 이루는 삶은 보람이었다.
다만, 내가 있었으나 내가 없던 날들.
오롯이 나 혼자로 존재하지 못했던 시절들.
그걸 알아차린 날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툭하면 눈이 벌게지고 눈물이 고였다.
쓸쓸했다.
아팠다.
그 순간,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
누구세요.
받아들이기 싫었다.
거부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스물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럼 남는 건 하나였다.
지금의 나를 다시 데려오는 일.
삶이 바뀐 계기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하루가 너무 무거워서,
하루를 바꾸려면
시작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새벽을 쌓다 보니 시선이 달라졌다.
고개를 살짝 돌리기만 해도
알 수 있었던 것들이 그제야 보였다.
내 주변엔 감동으로 가득했다.
바람이 부는 소리,
하늘이 밝아오는 속도,
바다가 내는 작은 소리 같은 것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아이를 바라보는 건
나의 행복을 외부로 투영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분명 내 삶이었지만,
내 삶이 거기에서만 끝나지는 않았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었고
바다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있었다.
바람에 실린 바닷소리가 나를 불렀다.
그 소리에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선명해졌다.
종종 가던 길을 벗어나
옆길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바다, 다른 마을이 보였다.
가볼까?
멀리서 보기엔 막혀 있는 길 같았는데
다른 곳까지 연결된 올레길이었다.
‘제주’라고 바닥에 쓰여 있고
알록달록 꾸며져 있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세상 구경을 했다
아직도 내 시선의 한계를 느낀다.
그럼 어때.
오늘처럼 발견하면 될 테지.
어제는 몰랐지만 오늘은 알았으면 됐어.
내일은 또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그 기대로 바다를 한 번 더 본다.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