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탓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 오는 날은 괜히 처진다.
등에 웬 녀석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거머리처럼 찰싹 붙었다.
내 에너지를 쪽쪽 빨아가는 느낌이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은 왔다 갔다 갈피를 못 잡고
마음은 정처 없이 어수선하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겨울비는 맞지 않으려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글을 더 쓸 수도 있고,
다른 책을 집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건 많은데
몸이 점점 기울었다.
배고픈 것도 아니요.
목마르지도 아니 한데 갈증 났다.
피곤하다는 신호로 봐야 하나.
누웠다.
"엄마 기운 없어지고 있어."
"그럼 자."
옆에서 휴대폰에 눈을 고정하며 딸이
다정하게 건넨다.
늘 해주는 말이다.
그 말을 기다렸는지도.
"20분만 잘게. 깨워줘."
잠이 들지 않았다.
기운은 더욱 침대로 파고드는데
정신은 일어나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다.
우선은 몸의 말을 따르기로.
"잠이 안 오는데 일어날 기운은 없어."
"그럼 더 누워 있어."
딸의 목소리가 자장가였을까.
잠깐 잠들었을까.
"지금 몇 시야?"
"엄마가 눕고 20분 지났어."
"아... 잠깐 잠들었나 봐."
"내가 엄마 다리를 건드렸는데 몰랐어?"
"응, 못 느꼈어. 그때 잠들었네."
10분 정도 잠들었나 싶다.
그렇게 누운 채로 가만히 머물렀다.
누가 '동작 그만' 버튼을 눌러준 것처럼.
생각도 움직임도 멈췄다.
소리도 끊겼다.
그 속에서 유영하듯 돌아다녔다.
정적인 세상에 나만 살아있는 느낌.
멈췄는데 흘렀다니.
"엄마. 다시 자?"
딸이 불렀다.
빗소리가,
딸이 휴대폰을 터치하는 소리가,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가,
내 숨소리가 귀가에 퍼졌다.
소리가 돌아오자, 나도 돌아왔다.
비 오는 날 무기력이 올라올 때면
자를 의심하곤 합니다.
'왜 이렇게 처질까.'
'내가 게으른가.'
그런데 딸이 먼저 말해주었어요.
"그럼 자."
"그럼 더 누워 있어."
짧은 말이었는데 '쉬어도 된다.'라는
허락처럼 들렸어요.
이웃님께도
그런 한마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없다면 오늘은 스스로에게라도
한 번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휴식은 거창한 계획에서 오기보다
잠깐의 멈춤에서 시작되더군요.
'동작 그만' 버튼이 눌린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동안
멈췄는데도 시간은 흘렀고,
그 틈으로 회복이 들어왔습니다.
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말보다 곁의 한마디와 태도가
먼저 작동할 때가 있습니다.
관계는 감정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딸을 통해 배웠습니다.
오늘 마음이 처지신다면
20분만이라도 몸의 말을
우선으로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당신의 편안한 오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