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다."
상당수 작가는 시간과 드잡이를 해가며 '머릿속 모니터'에 쓰고 지우기를 거듭한다. 단어를 고르고, 고치고 꿰매는 일을 되풀이한다. 채 경험하지 않았거나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문장으로 이야기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엉덩이력과 필력은 비례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종이 앉아 있다 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거의 실패한다. 머릿속에 잠복해 있던 단어가 문장으로 변하는 순간 물 밖을 나온 생선처럼 신선함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글을 쓰는 작업은 실패할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과정.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글쓰기의 ‘재능’보다 먼저
자리에 앉는 능력을 떠올립니다.
멋진 문장이
한 번에 내려오는 날은 드물고,
대부분은 커서만 깜빡이고 있거든요.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붙이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 과정이 느리고 지루해서
더 자주 미뤄집니다.
처음부터 앉아 있다고
글이 나오진 않았어요.
앉으면 써지겠지,
하는 기대는 금방 바닥났지요.
글이 안 나오는데도 앉아 있었고,
답답한데도 앉아 있었고,
쓸 내용이 없는데도 앉아 있었습니다.
커서만 깜빡이는 시간을 견디는 게
글쓰기의 대부분이었어요.
새벽에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처음엔 헛손질을 합니다.
문장을 늘였다 줄였다 하다가,
‘이건 아닌데’ 싶은 말들을 지웁니다.
그렇게 실패를 몇 번 하고 나면
아주 작은 문장 하나가 남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날의 제 상태를 말해주는 문장이에요.
그 시간을 반복하다 보니,
‘엉덩이의 힘’은 의지가 아닌
습관의 형태로 남았습니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에도 자리에 앉는 것.
그게 제가 만들 수 있는 규칙이었고,
그 규칙이 하루를 밀어줬습니다.
요즘은 목표를 낮췄어요.
30분만 앉아 있겠다로요.
결과를 만들기보다
시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글은 완성보다도
계속 머물러 있는 쪽에
더 가까운 작업이니까요.
2년을 매일 썼습니다.
매일 앉았고, 매일 시도했고,
매일 쥐어짜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한 문장도 못 건졌고,
어떤 날은 억지로 붙여 넣은
글들이 남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실패들이 쌓이니까
‘글이 되는 날’이 생기더군요.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한 영감 때문이 아니라
그 습관 때문입니다.
글이 없을 때도 앉았던 시간,
답답해도 일어나는 대신
앉아 있었던 시간,
쓸 말이 없다고 해도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시간.
그 시간이 엉덩이의 힘을
습관으로 만들었어요.
그 습관으로
오늘도 다시 의자에 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