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새벽 3시 58분.
꿈을 꾸다가 알람에 잠에서 깼지요.
이런 날은 조금 멍합니다.
눈을 뜨기가 어렵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그 상태로
이불 속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바위가 매달린 것 같은 몸이
야속하던 날들이었지요.
요즘은 다릅니다.
그러든 말든,
제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미라클 모닝을 2년쯤 이어오니
지금 비몽사몽해도
결국 풀린다는 걸 압니다.
조금만 움직이면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스트레칭을 몇 동작하고 나면
몸이 “아, 깨어나는 시간이구나.”
하고 따라옵니다.
오늘도 새벽을 만난 나를 칭찬합니다.
오늘에게 감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피곤이든 뭐든,
예전만큼 크게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그래도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저는 왜 이토록 새벽에 집착하는 걸까요.
미라클모닝을
자기 계발의 상징처럼 말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 생산적인 하루를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하는
루틴이라고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작이
그렇게 반짝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미라클 모닝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어요.
한때는 밤이 두려웠고,
잠드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불면이 길어지면
사람은 단순히 잠을 못 자는 게 아니에요.
마음이 불안해지고,
하루가 흔들리고,
내가 나 같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아침은 괴로운 시간이 되고,
저녁이 오면 또 같은 밤이 시작될까 봐
겁이 났어요.
그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됐어요.
루틴은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요.
어떤 사람에게 습관은 성장의 도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습관은 생존의 장치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드는 질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지켜내는 작은 약속들 말이지요.
미라클 모닝이 제게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만이 아닌
삶의 중심을 다시 붙드는 방식.
새벽에 나를 먼저 깨우고,
내 호흡을 먼저 확인하고,
하루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내 손으로 시작해 보는 일입니다.
그 감각이 조금씩 쌓이자
내 안에 있던 불안도
조금씩 자리를 잃어가더군요.
시간이 지나 예전 글들을 다시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얼마나 불안했고,
얼마나 흔들렸고,
얼마나 간절하게 버티고 있었는지가
문장 속에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지나온 줄 알았던 장면들이 다시 올라왔죠.
그래서 더 분명해졌습니다.
아, 나는 이 루틴을 좋아서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삶의 간극을 알기 때문에
놓지 못하는 거구나.
지금의 제가 강해서
이걸 지키는 건 아닙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세계를 한 번 지나온 사람만
아는 두려움이 있어요.
다시 잠에 무너지고,
다시 하루에 휩쓸리고,
다시 내 삶을 잃어버리는 감각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루틴을 선택합니다.
이상하게도 살기 위해 시작한 습관은
어느 순간 삶을 사랑하게 만들더군요.
처음에는 버티기 위해 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했고,
간신히 나를 붙들기 위해 했던 일인데,
어느 날부터는 감사가 생깁니다.
새벽이 좋고,
아침이 신나고,
하루가 소중하고,
지금의 내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됩니다.
생존의 습관이
기쁨의 습관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저는 미라클 모닝을
성공 루틴이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그것은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한
선택일 수 있으니까요.
저는
더 잘 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 간절함이 지금은
저를 더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새벽을 만나러 갑니다.
먼지 같은 성공이 쌓여 산이 되는 그날까지
지금의 나에게 머물기.
미라클 모닝 722일째.